○…김영하의 소설 에는 CIA의 ‘모스크바 수칙’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 “한 번은 우연, 두 번은 우연의 일치, 세 번은 공작이다.” 1년 사이에 열린 세 번의 총학선거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총학생회를 출범시키지 못한 광경을 지켜보며 이 구절이 떠올랐다. 잇따른 무산에 음모론을 제기하려는 건 아니지만,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여파가 너무 커서다.○…차라리 공작의 결과였으면 하는 되바라진 생각도 든다. 그러면 최소한 학생사회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결과는 아니니 말이다. 다시금 고색창연한 표현을 되뇌게 된다. 총학
○…전례(前例)가 없다. 지난 19일 열린 온라인 공청회를 지켜보며 든 생각이다. 코로나가 다시금 심각해지면서 총학 선거공청회마저 비대면으로 열린 덕에 매번 찍던 공청회 현장 대신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줌 화면을 사진에 담아야 했다. 선거의 흥분을 고조시키는 선거운동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캠퍼스가 선거로 떠들썩하기는커녕 더욱 조심하는 분위기니, 선거가 선거 같지 않게만 느껴진다.○…선거는 일종의 축제(festival)라고 생각한다. 열의에 가득 찬 후보자와 그에 호응하는 열렬한 유권자들. 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지켜보는 이의 피
‘팽창’ 대신 ‘압축’ 택해야 생존 초광역권으로 통합하고거점도시는 주변 끌어안아야 베이비부머 귀향 시 새 기회 열려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한 서울·경기·인천에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살고 있다. 수도권의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지방의 인구는 점점 줄어든다. 인구가 줄어들면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살면 좋지 않을까? 지난 10월 27일 만난 마강래 교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도시에서 인구가 빠져나가서 점점 듬성해지다 보면 도시에 깔려있는 도로, 상하수도, 문화시설의 효율성이 굉장히 낮아지게 됩니다. 사용하는 사람이 적
○…날씨가 추워지니 하나둘 과잠을 입은 모습들이 보인다. 한눈에 봐도 가죽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것만 같은, 티끌만한 때 하나 없이 번들거리는 20학번들의 검은색 과잠에서는 기분 좋은 설렘마저 느껴진다. 새내기 적은 한창 과잠 입을 시기다. 이때 아니면 언제 입고 다니겠는가. ○…하지만 언젠가부터 과잠을 입는 게 주책인 것만 같다. 2년 차까지는 그럴 수 있다손 치자. 고학번이 되고 나서도 과잠 입은 모습을 보면 나까지 괜스레 민망해진다.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온종일 기분이 안 좋다면서, 하나같이 몰개성적인 과잠을 입는
○…깃발은 지극히 상징적이다. 깃발을 꽂는다고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보이는 그림이 더 좋아질 뿐이다. 설령 깜빡하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깃발을 꽂지 않더라도 에베레스트 등정은 등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깃발을 꽂는다. 달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도, 이오지마섬을 점령했을 때도, WBC 한일전에서 승리했을 때도. 신성한 의식마냥 매번 깃발을 잊지 않는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깃발 꽂는 행동이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면 DNA에 각인된 결과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정복 전쟁을 즐기던 본능이 오랜 기간 유전을 거치면서 폭
트럼프 대선 불복할 가능성도정상으로 돌아가고파 바이든 지지‘차세대 좌파리더’ AOC 주목해야 '자유주의 제국의 질서 속 평형은 이미 오래전에 깨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백인 인종의 헤게모니와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는 트럼프는 이 해체기를 상징하고 촉진하는 카오스의 제왕이다. 트럼프는 자유주의 제국의 가식과 위선을 드러내는 정치의 조커다.’ 안병진 교수는 저서 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조커’에 비유했다. 11월 3일,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지난 4년간 트럼프가 만들어낸 혼란과 무질서를 겪어온 미국인들은 과
○…400m 달리기는 육상 종목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종목으로 꼽힌다. 100m 나 200m 달리기처럼 전력으로 달려야 하지만, 레이스가 끝나기도 전에 몸 안의 에너지가 모두 바닥나버린다. 동시에 젖산이 분비돼 근육 내에 피로와 통증을 유발한다. 그 고통이 너무나 극심한 나머지 우 사인 볼트는 400m를 포기했다고 한다. ○…시험을 육상 종목에 비유해보자. 수능은 마라톤이다. 오랜 기간 준비하는 만큼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 중간·기말고사는 이상적으론 하프 마라톤이겠지만, 현실적으론 한주 안에 모든 걸 쏟아붓는 100m 달리기다.
○…참고를 위해 작년 학기 초 회계감사를 다룬 신문을 들춰봤다. 당시 1면 사진은 회계 비리를 규탄하는 민주광장 집회현장. 1년 전 잃어버린 황금열쇠를 찾자며 들고 일어섰던 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황금열쇠와 비교해 유흥업소는 시시한 걸까. ○…작년 이맘때의 조국 규탄 집회와 달리, 이번엔 촛불이 없어서 촛불시위 안하냐는 냉소도 들려온다. 촛불 보내주겠다는 아량 넓은 제안은 마음만 받기로. ○…코로나와 총학생회의 존재 여부는 차치하고, 나름대로 가설을 세워봤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참고했다. 부정(denial)-분노(ange
지난달 21일 열린 2021 KBO 리그 2차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박건우 씨가 기아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았다. 최근 고졸 선호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졸 선수의 1라운드 지명은 4년, 본교 선수의 지명 자체는 2년 만의 일이다. 신장 193㎝의 우완 정통파 투수인 그는 높은 타점에서 나오는 최고구속 148㎞/h의 패스트볼을 구사한다. 안암 호랑이에서 광주 호랑이가 된 그를 만나봤다. - 지명을 축하한다. 기분이 어떤지 “처음에는 하루 이틀 정도 연락도 많이 오고 관심도 많이 받아서 좋았는데, 이제는 시간이 좀 흘러서 덤덤합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있다 없으니까 허전한 건 고연전도 매한가지다. 그 덕에 ‘고연전 없는 고연전 특집호’라는 역설이 생겼다. 붕어빵마냥 붕어는 없더라도 최소한 모양은 갖추려 노력했다.○…0.315%의 바나나 함량으로 그 풍미를 내는 바나나 우유의 비법은 합성향료. 고연전 풍미를 내는건 무엇일까. 이번 특집호를 준비하는 과정은 그 해답을 찾아가는 구도(求道)와 같았다. 연세춘추와 전례없는 콜라보를 기획하고, 지난 10년간의 고연전 사진을 뒤졌다. 기억 저편을 더듬어가며, 고연전을 겪어본 적 없는 새내기 기자와 아
○…‘세게 한 대 맞을래, 살살 열 대 맞을래.’ 어릴 적 혼날 때 항상 답하지 못했던 난제다. 시간이 지나니 외피는 달라져도 본질은 동일한 선택에 직면하곤 한다. 짧고 굵게 가냐, 가늘고 길게 가냐. 대포 한 발이냐, 따발총 여러 발이냐. 일시불이냐, 할부냐. 한탕이냐, 티끌 모아 태산이냐. ○…보통의 한국인은 무엇을 더 선호할까. 짐작하건대, 전자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다. 치킨이름만 봐도 그렇다. ‘통큰 치킨’ 이름에서부터 ‘대도무문’(大道無 門)의 정신이 떠오르지 않는가. ○…세종캠이 ‘학습 안정화 보장 장학금’ 지급안을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 영화 007시리즈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한결같은 취향이다. 젓지 않고 흔드는 게 무슨 차이냐 싶지만, 미묘한 차이라도 있으니 그렇게 달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하물며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술맛인데, 누구와 언제, 어디서 술을 마시는지에 따라서는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마련이다. ○…시원한 가을밤, 탁 트인 광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울이는 술은 달콤하다. 그러니 밤 9시 이후 술을 들고 슬금슬금 중광과 민광으로 모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