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라 불리는 사회변동 양상을 둘러싸고 장밋빛 낙관에서 묵시록적 비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분석과 논의들이 이뤄져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여기서 놓쳐선 안될 것은 대척관계에 있는 듯한 극단의 현실이 실은 서로를 그 일부로 하는 단일한 사회적 과정, 즉 전지구적인 자본 동학의 상이한 양태로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의 9·11 대참사를 계기로 국내외적으로 전개됐던 일련의 경제 - 정치적 상황들은, 민족/국민국가 내지 특정 지역을 자기완결적 단위로서 접근해 온 기존의 접근 틀이 한낱 ‘분석적 착각’에 지나지 않으며, 기존의 분석적 관성과의 ‘인식론적 단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함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이는 현시기가 자본 동학의 공간적·문화 - 정치적 재편에 대한 수세적 대응이 아닌, 궁극적으로 이를 ‘넘어서는’ 비판 담론의 발본적 재구성이 중장기적 차원에서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의 저자 아리프 딜릭은 이러한 비판 담론, 특히 이의 수장격인 맑스주의의 생산적 재구성에 필요한 이론적 검토 지점과 그 역사적 맥락들을 전지구적 자본 동학의 궤적에 대한 포괄적 분석을 바탕으로 꼼꼼히 살피고 있다. 저자는 우선 맑스주의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급진적 비판인 한, 그것의 분석적 유효성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인 오늘날 한층 더 빛을 발하리란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다.

물론 이는 ‘과학’으로 자신을 정초하려 했던 기존 맑스주의의 ‘부활’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저자는 맑스주의가 그 자체의 해방적 잠재력에도 불구, ‘현실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함께 비판적 적실성에 있어 명백한 한계에 빠졌던 결정적 이유를 ‘보편사적 필연’과 결부된 자본주의 서사의 시·공간적 목적론 및 개념적 전제들을 ‘과학적 진리’라는 기치 아래 더욱 철저히 내면화했던 것에서 찾는다. 맑스주의가 발전/국가주의에 함몰된 동원형 사회체제 구축의 교조적 전거로 전락하는 역설에 빠졌던 건 그 역사적 귀결인 셈이다. 저자는 이제는 자본 동학 스스로가 근대화론의 시공간적 전제들을 거스르며 유연생산 체제로 재편된 현 상황에서, 맑스주의가 자본주의적 근대의 ‘파생 담론’이 아니라 능동적인 해방적 사회구성 담론으로 그 역동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유럽중심주의적인 근대 서사 및 이와 관련된 계급중심주의적 환원으로부터의 자기비판적 탈피가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자본/사회주의가 공유하던 근대의 단일 인과론적 거대 서사에 대한 가장 급진적 비판이라 할 탈식민 담론을 다룬 마지막 장이다. 저자는 탈식민의 문제틀이 갖는 일정한 긍정성에도 불구, 그것이 내세우는 ‘차이의 정치’가 현실에서는 오히려 전지구적 자본의 요구에 공명하는 문화정치적 윤활유로 활용되는 역설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탈식민 담론은 축적의 전지구적 맥락을 내포한 관계적 총체 내에서의 차이를 분석할 수 있는 ‘구성적 서사’로 재배치될 때라야 현존 체제를 실질적으로 압박하는 급진적 해방 담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전지구적 현실 지형 속에서 국지적 맥락에 기반 한 대안적 사회구성 전략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의 관계를 꿈꾸는 이들에게, 맑스주의의 가능성을 여타의 다채로운 비근대·비서구적 사유체계와의 생산적 접속에서 찾고자 하는 딜릭의 이 같은 통찰들은 두고두고 풍부한 정치적·담론적 영감(靈感)의 원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