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꽃으로 염색한 옷감

유교사상에서 적색은 ‘화려함’과 ‘바른 것’으로 표현되는 색채다. 이를 반증하듯 적색은 조선시대에 연회의 화려함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기능을 했다. 이 때문에 적색은 ‘철저한 고증을 거치는’ 사극들 속에 자주 나타난다. 사극 <여인천하> 주인공 난정이는 분홍색 당의를 입고 문정왕후를 만나기 위해 입궁한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황진이>의 주인공인 황진이 역시 임금 앞에서 붉은 계열 치마를 입고 검무를 선보인다. 또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3정승 급의 고위관료나 임금의 복장은 붉은색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평민들이 적색계열의 한복을 입은 장면을 확인하기는 힘들다. 문헌을 찾아봐도 적색이 왕족이나 사대부, 궁인, 군인, 기인 등의 특수신분의 옷에 쓰였다는 자료는 있어도 평민들의 의상에도 쓰였다는 자료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의 오행법(五行法)상 적색이 권력의 상징인 것도 한 원인이지만, 염색 재료가 희귀해 적색 옷감 제작 시 비용이 많이 드는 것 역시 한 원인이었다.

붉은 색을 내는 대표적 염료인 잇꽃은 당시 생산량이 많지 않았다. 옷 한 벌을 염색할 수 있는 분량의 잇꽃을 재배하기 위해선 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결은 4인 가족이 한달 분 식량을 생산할 만큼의 땅이었다. 그로 인해 잇꽃의 공급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또한 자색(紫色), 홍색(紅色) 옷감을 물들이는 데 사용됐던 재료인 단목(丹木)은 전적으로 일본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의존해 비용이 특히 많이 들었다. 세종 때 사간원에서 올린 상소에서는 ‘단목(丹木)은 전적으로 왜객(倭客)의 매매(賣買)에 힘입어 국용(國用)에 제공되나 위로는 경대부(卿大夫)로부터 아래로는 천예(賤隸)에 이르기까지 자색(紫色) 입기를 좋아하니 자색의 값은 다른 옷감 한 필 염색할 값의 두 배가 듭니다. 옷의 안감까지 모두 홍색의 염료를 쓰게 되니. 단목의 값도 또한 싸지 않게 됩니다’고 지적했다. 이에 세종은 사치를 막기 위해 단목(丹木)의 쓰임을 진상용과 대궐에서 쓰이는 일로 한정짓고, 그 외의 사용을 금했다.

남윤자(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조선은 부국책의 하나로 근검절약을 강조했기 때문에 제작에 많은 비용이 드는 적색 계열의 옷은 금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물감 재료의 수탈 또한 적색 계열의 옷 보급을 힘들게 했다. 중종실록 15권은 ‘잇꽃(紅花)의 진상품 양이 겨우 한 말인데 지방 수령이 백성들에게 거둬들인 분량은 30말을 넘으니 백성들이 잇꽃을 더 가꾸려 하지 않고 염료는 품귀에 이르렀다’고 기록한다. 권내현(사범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규정이상의 양을 거둬 잇꽃을 생산하던 백성들이 힘들어서 도망가는 일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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