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월) 문학구장 열린 200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 3회초 1아웃 주자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정근우(체육교육학과 01학번) 선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투 스트라이크 원볼 상황에서 두산 투수 임태훈 선수의 4구째 공을 힘껏 휘드른 정 선수는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홈런~’ 정 선수의 홈런은 승부를 결정짓는 결승 홈런이 됐고, SK가 창단 첫 우승하는데 일등 공신이 됐다. 정 선수의 대활약은 본교 출신 야구선수 계보를 잇는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1948년 창단한 고려대 야구부는 지난 60년 동안 대학야구 강자로 군림하며 수많은 스타선수를 배출했다. 하지만 창단 당시에는 해체와 재창단을 거듭하며 연세대에 비해 약한 전력을 보였다. 지금의 야구부의 전신 격인 보성전문시절 보연전을 두고 전문가들은 ‘야구는 연전, 축구는 보전’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도 이런 상황은 이어졌다. 하지만 1974년 춘계연맹전 우승을 시작으로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당시 본교는 김용희(행정학과 74학번), 허구연(법학과 71학번) 선수 등 강타자들이 즐비했고, 국가대표 에이스 황규봉(체육교육학과 73학번) 선수가 버틴 마운드도 탄탄했다.

▲ 선동렬, 박노준 선수 고교시절 사진

고교야구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고교야구가 열린 동대문 야구장은 항상 만원관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양상문(경영학과 79학번), 선동렬(경영학과 81학번), 박노준(경영학과 82학번) 등 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했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한 80년대 초반은 대학야구의 전성기였다.

특히 1978년 세계 청소년야구대회에서 준우승 멤버 중 6명이 본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고려대 시대’를 열어갔다. 현 본교 야구부 양승호(사회교육학과 79학번) 감독이 당시 6명 중 한명이다. 1981년 서울에서 열린 제 4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을 꺾고 우승할 당시 본교 1학년 선동렬 선수는 최우수선수에 뽑히기도 했다.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실업팀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 대거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프로야구 원년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선수는 바로 이종도(체육교육학과 70학번)다. 지난해까지 본교 야구부 감독을 맡기도했던 이종도 선수는 1982년 MBC와 삼성의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10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프로야구 시작을 알렸다. 이듬해 1983년 프로야구 첫 신인왕 역시 본교 출신 박종훈 선수가 수상했다.

1980년대 프로야구는 선동렬 선수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선동렬 선수는 1985년부터 한국프로야구에서 11년간 활약하며 통산 146승 132세이브 방어율 1.20을 기록했다. 이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 진출 ‘나고야의 수호신’으로 명성을 높였다. ‘미스터 올스타’ 김용희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 4번 타자로 프로야구 원년 올스타전을 포함 올스타전 MVP만 2차례 선정되며 유독 올스타전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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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고 시절 박동희 선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본교 야구부는 대학야구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심재학(법학과 91학번), 조성민(경영학과 92학번), 손민한(체육교육학과 93학번) 선수 등이 주축을 이룬 1994년부터 각종 전국대회를 석권하기도 했다. 종합야구선수권대회에선 1994년부터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대통령기에선 1994년부터 3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0년대에 들어 본교 선수들은 대학시절의 활약에 힘입어 각 팀을 대표하는 스타 선수로 발돋움했다. 김광림(무역학과 80학번) 선수는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 시절인 1995년 타격왕을 수상하며, 당시 대표적인 교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정삼흠(경제학과 81학번), 김응국(체육교육학과 84학번), 이명수(경제학과 85학번), 김경기(법학과 86학번) 선수 등이 붙박이 주전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대형 유망주로 인정받던 박노준, 박동희(체육교육학과 86학번) 선수는 대학시절 무리한 출전과 부상 등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아쉬움을 줬다.

지난 2000년에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4월 18일 본교출신 롯데 임수혁(경영학과 88학번) 선수는 LG와의 경기에서 1루에서 2루로 뛰던 도중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뇌사상태에 빠졌다. 아직까지도 임 선수는 호흡기에 의지한 채 생을 이어가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임수혁 선수의 쾌유를 비는 팬들이 내건 현수막

2000년대 들어 고졸 출신 선수들의 조기 프로 진출에 밀려 본교 출신들의 프로 진출이 감소추세에 접어들었다. 최근 5년간 본교 출신 선수를 1차 지명에 선발한 구단이 없으며, 2차 1라운드에 지명된 본교 선수는 SK에 지명된 정근우, 이창욱(체육교육학과 03학번) 선수 단 2명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본교 야구부 황금기를 이끌었던 선수들이 군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에 완전 적응한 모습을 보여줬다.

90년대 후반 갈기 머리로 큰 인기를 끌었던 이상훈(경영학과 89학번) 선수는 좌완투수 최초로 20승을 기록했으며, 일본과 미국에도 진출해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또한 지난 2002년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는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 마해영(체육교육학과 89학번) 선수도 프로통산 3할 타율을 기록하며 본교를 대표하는 야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힘과 뚝심의 두산 베어스의 상징과 같은 존재인 김동주(경영학과 94학번) 선수는 지난 10년 동안 프로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올해 FA대박을 노리고 있다. 이 밖에도 강상수(체육교육학과 90학번), 심재학, 조경환(경영학과 91학번), 김종국(체육교육학과 92학번), 진갑용(체육교육학과 93학번), 박용택(경영학과 98학번), 이택근(체육교육학과 99학번) 선수 등이 프로야구 주축선수로 성장해 활약했다.

왼쪽부터 정근우, 이택근, 송신영 선수

올해까지 프로구단에서 활약한 본교 출신 선수는 113명이며, 올해 지명 받은 3명과 지명 후 구단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를 포함하면 150명에 이른다. 현재 26명이 프로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것은 대학출신 중 가장 많은 숫자며, 한양대, 경희대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지난 2006년 온 국민을 열광케 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선 본교 출신 선수 7명이 출전했다. 미국전에서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을 터뜨린 최희섭(법학과 98학번) 선수를 비롯 예선전에서 부상을 당해 중도하차했지만 과감한 주루플레이로 온 국민을 감동시킨 김동주 선수, 김선우(경영학과 96학번), 손민한, 진갑용, 박용택, 김종국 선수는 우리 대표팀의 3위 입상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꿈의 무대라 불리는 메이저리그에선 3명의 선수가 활약했다. 최희섭, 김선우, 이상훈 선수는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 두산베어스 김경문 감독
선수들은 프로에서 은퇴한 뒤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감독은 이광환(경영학과 67학번), 허구연, 김용희, 양상문, 양승호, 김경문(경영학과 78학번), 선동렬 감독 등 총 7명이다. 특히 90년대 초반 ‘자율야구’를 도입 프로야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이광환 감독은 이후 한화와 LG 감독을 거치며 대표적인 명장으로 손꼽힌다.

현재 프로야구 8개 구단 중에선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과 선동렬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은 나란히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감독과 코치로 선임돼 그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한편 방송과 라디오에서 허구연, 박노준, 이성득(체육교육학과 73학번), 이병훈(신문방송학과 86학번), 이종도 등이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며 많은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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