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잘 산다는 의미는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고, 이를 위해서 충족되어야 할 기본적인 욕구도 다르다. 

70년대의 잘 산다는 의미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고, 먹고사는 의식주 문제의 해결이 충족되어야 할 가장 필요한 욕구였다.

새로운 세기의 서막을 열린 21세기, 잘 산다는 의미는 국민 개개인의 자아실현을 보장하는 복지사회형성이고, 이를 위한 선결과제는 위협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 조성하는 것이다. 즉 개개인의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이름하여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었던 초고속성장과 급진적인 산업화로 국민 소득수준의 향상과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왔다.

그런데 그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성장 제일 주의가 낳은 빨리빨리병은 사회를 구성해나가는 구성요소들 간에 불신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 특히 불신의 망령은 안전불감증을 국민들에게 전파하여, 잦은 대형사고를 일으켜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가져왔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기술의 진보와 도시화로 생활의 편리함과 삶의 질을 높혔다는 장점은 있지만, 각종 사고와 환경오염의 문제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사회의 도래를 경고하였다. 이러한 벡의 진단은 우리 사회에도 변함 없이 적용되고 있다. 


KAL기 추락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씨랜드 화재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까지, 해마다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대형 사고로 사고공화국이라는 국제적인 오명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하루를 거르지 않고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가정, 유치원, 학교, 도로, 지하철, 산업현장, 하늘, 땅, 바다 등 가릴 것 없이 전국 도처에서 발생하는 사고로 국민들의 85%가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니 우리사회가 상당히 위험사회임을 입증한다.

이번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경우에도 300여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고 있으며, 묵묵히 착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희생에 온 국민들이 분노와 경악을 하고 있다. 그 희생에는 안전을 소홀히 한 정부 당국과 시민의 발임을 자칭하는 지하철의 재난체계 허술, 지하철 종사자들의 위기 대처 능력의 미비 등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항상 사고가 나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며, 늘상 사고 발생원인을 규명하고 나면 거의 '인재'로 결론이 난다. 또한 그 문제를 전 국민들의 '안전불감증'으로 치부하며, 국가는 앞다투어 '재난을 대비한 획기적인 체제 구현'이라는 거대한 구호성 대책과 사고발생 후 관련자를 구속하고 법에 따른 형이 주어지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해왔다.

1996년 OECD 가입과 함께 선진국 반열에 섰다고 자축해왔고, 2002년 월드컵 개최로 세계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더 높였다하지만,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발생을 “후진국형의 사고, 대한민국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고”라는 국제적 비난은 우리나라 곳곳에 만연된 인명경시와 국민의 생명보다 업적과 성장 제일의 문화적 치부를 일깨워 주었다.

안전하게 살 권리는 국민의 권리이고, 사회를 국가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법적, 행정적인 제도를 만들고 이를 이행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더군다나 그 나라의 문화의 척도는 안전도, 즉 안녕 상태와 비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제원리에 입각하여 비용을 줄여서 건물을 짓고, 안전교육과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왔고, 이윤추구에 최종 목적을 두어왔다. 이러한 처사는 당장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지 몰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과 재산의 더욱 큰 손실을 가져온다는 진리를 이제는 정부와 온 국민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하루아침에 종식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 개개인의 생활 속에서 안전이 뿌리내릴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해 나가도록 정부당국은 지속적인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거대한 재난 체계를 만들고 부서를 만드는 것보다 어려서부터 안전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안전과 관련된 규제를 강력하게 강화하면서 안전한 사회를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구 화재 참사로 희생된 우리 이웃의 죽음을 더 이상 헛되이 하지말고, 죽음으로 우리 사회의 위험을 알려준 그들의 무언의 외침과 경고를 국민과 정부는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