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하게 솟은 아카시아 나무들이 우거져 산길은 깊숙한 그늘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오르자 지붕이 낮은 판잣집과 거뭇하게 변색된 슬레이트 지붕이 어깨를 맞대고 나무숲과 어우러져 있었다. 내가 찾는 집은 막다른 산길에서 반듯한 삼각산을 등지고 있었다. 좁은 공터에 차를 세우고 집 가까이 다가가자 다리가 짧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개가 사납게 덤벼들었다. 개가 짖는데도 얼굴을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어둑한 방안에서 얼굴이 뾰족하게 마른 노인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방구석에 누워 멍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처럼 낯을 가리는 노인이라던 승구의 말이 떠올랐다. 낯을 가리는 것보다 숫제 무심한 눈길은 나를 바라보는 것인지, 일말의 경계심을 품고 나의 행동을 두고보자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머리맡에 다가가 앉았다.  
  "승구 친구입니다. 수요일마다 봉사하러 오는 친구있잖아요, 다리를 잘 못 쓰는……."
  힘없이 축 처진 눈꼬리에 담긴 슴벅거리는 눈은 경계의 빛을 흘리며 내 어깨 뒤에 풍선처럼 매달려 자신을 굽어보는 어렴풋한 죽음의 형상을 더듬는 것 같았다. 죽음을 찾아 먼길을 달려온 사내로부터 죽음의 냄새를 맡았는지 그의 얼굴에 회환의 빛이 스쳤다. 다시 몇 마디를 건넸으나 그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뭐라 하든 그는 입을 굳게 다물 작정인 것 같았다. 그에게 나라는 낯선 인물이 익숙해지고 경계가 누그러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초등학교 4,5학년 정도의 작은 키에 가냘픈 몸은 영락없이 아이의 체구였다. 그는 상반신을 숙이고 나를 바라보았는데 일순 그 얼굴에서 어슴푸레하지만 분명 창백한 미소가 잔잔하게 번졌다.
  "그림을 그린다는 그 분이신가요?"
  그의 목소리는 목쉰 아이처럼 탁하면서 갸날펐다. 그는 노인이 아니라 조로증(早老症)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소년이었다. 세상을 깨닫기 전 이미 그는 노쇠해버렸고 삶을 생략한 채 일순 거대 죽음에 직면해 버렸다. 그는 삶을 통해 죽음을 직관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삶을 조율해야 하는 무척 난해하고 지난한 처지에 놓여버렸다. 그렇게 허둥대다가 문득 생(生)을 압축시킨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승구는 오 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승구는 이후로 '생의 여유'를 베푼답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자원봉사활동을 나갔다. 자신과 같은 장애자와 독거노인을 돕는 봉사활동이었다. 봉사활동 중에 승구는 낯을 가리는 노인을 만났다. 승구가 장애를 극복하고 생의 여유를 베푸는 동안 나는 채워지지 않는 궁핍한 예술혼에 휘둘려 줄곧 화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을 구상하고 있었다. 마침 인사동에 있는 제3아트 갤러리 개관 전시회에 초청을 받아 작품 몇 점과 함께 출품할 기회가 있어 이번 기회에 작품을 마무리하려고 단단히 작정을 했다. 욕심대로라면 페라리가 그린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을 능가하는 불멸의 작품을 그려내고 싶었다. 그러나 한 달이 넘도록 작품은 제목도 없이 ‘구성 NO.7’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그림은 반추상이었다. 나는 우선 결코 되물릴 수 없는 견고한 죽음의 세계를 상징할 양 대지에 반쯤 파묻힌 바위를 하나 상상해보았다. 바위와 대지를 암색으로 일체감 있게 표현하고 몸통이 바위 속에 파묻힌 채 간신히 얼굴만 돌출된 사자(死者)의 얼굴을 구상했다. 그 얼굴을 하느작거리는 흰옷을 입은 천상의 여인이 두 손으로 감싸고 비탄에 젖은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그려낼 생각이었다. 검은 구름 일색인 하늘을 놓고 그 아래 어둡고 불에 타버려 몸통만 남은 앙상한 나무가 바위산에 드문드문 박혀있는 정경을 배경으로 했다. 나는 구성안대로 드로잉한 다음 몇 번이나 작품을 완성시키려고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도무지 사자의 얼굴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잠든 얼굴과 죽음이 덮인 얼굴, 그 미묘하면서도 심오한 차이를 그려낼 수가 없었다. 내 그림은 종종 죽음이 아닌 절망에 빠져든 얼굴을 그려댔고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 그려 넣은, 사자의 얼굴을 향해 비쳐드는 가느다란 햇살의 영향 때문인가 해서 빛의 세기를 강하게 혹은 약하게 잡아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유감스럽게 나는 사자의 얼굴을 대면한 적이 없었다. 냉정한 관찰자의 입장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나는 미처 죽은 자의 얼굴을 그려내지 못했다. 몇 번의 데생과 지움을 반복하다 이젤을 밀쳐 두고 있던 중에 승구가 찾아왔고 그로부터 누구보다도 죽음 가까이 있다는 노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주말마다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소년을 찾아갔다. 처음에 데면데면 굴던 소년은 단지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나의 방문을 반겼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모르게 흘리기도 했다. 모든 불행과 악을 가냘픈 몸 안에 압축시킨 것 같은 그의 몸은 쇠락할 대로 쇠락해 있었다. 영원히 성장을 멈춘 작은 키에 머리는 백발이 성성했고 이마엔 주름이 깊게 패였으며 버석거리는 얼굴 가죽은 지구의 강한 중력에 의해 당장 흘러내릴 것 같았다. 당뇨, 고혈압, 심장병 같은 노인성 질환이 그를 괴롭혔으며 낡은 스폰지 같은 폐에서는 끊임없이 곰팡이가 번식해 소년은 늘 쿨룩거리며 밭은기침을 해댔다. 이처럼 여러 합병증으로 인해 소년은 하루에도 수 십 알의 알약들을 삼켰다. 약 기운 때문에 그는 늘 졸거나 흐리멍텅한 표정으로 어둠침침한 방안의 한곳을 응시하기 일쑤였다. 정신적인 공황은 물론 육체적인 고통과 단조롭고 폐쇄된 생활은 그를 권태의 수렁에 빠지게했다. 빠른 세월과 권태라는 이 모순된 상황이 그를 사색적인 인간으로 만드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년은 종종 여느 노인처럼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방안을 거닐었다. 그는 뭔가에 골몰하면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방안을 빙빙 돌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일까, 그는 열세 살짜리 나이답지 않은 상상력과 사고력을 갖고 있었다. 육체의 나이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정신연령이지만 또래 소년들이 곧잘 갖는 호기심과 장난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의 주된 관심사는 오직 자신의 육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가역반응(不可逆反應)에 대한 지속적인 고찰이었다. 아이의 명랑함은 병적인 우울증에 눌려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조로증을 병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급속히 진행되는 노화현상 따위는 주파수가 맞지 않는, 잡음투성이 라디오처럼 자신의 생체 시계와 외부의 물리학적인 시간이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어긋나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시간의 정체를 밝히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연구하고 사색하는 일을 반복하다 평소 복용하는 약에 두통약을 추가했을 뿐 이렇다할 성과는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한번도 시간에 굴복한다거나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은 적이 없었다. 시간에 집착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일지언정 소년은 의외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방에는 여러 잡다한 책들과 함께 <신세계>라는 표제가 붙은 화집 한 질이 놓여 있었다. 하드커버로 장정된 표지는 손때로 번들번들했고 책 모서리는 닳아 보푸라기가 일어 있었다. 화집을 펼치고 들여다보는 것은 소년의 주요일과였다. 나는 그가 천부적으로 아티스트의 기질을 타고났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소년이 살바도르 달리(Salvador Felipe Jacinto Dali)의 <기억의 지속>이라는 그림을 바라볼 때의 얼굴 표정을 지켜보노라면 그에겐 분명 숨길 수 없는 아티스트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소년은 <기억의 지속>이야말로 시간의 권위에 정면 도전하는, 시간에 대한 뒤틀린 인식과 인간의 위선을 낱낱이 드러낸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달리는 시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위대한 예술가라고 소년은 생각했던 것이다. 소년의 믿음에 나도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였다. 비단 달리 뿐만 아니라 수많은 화가들이 시간을 통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3차원적 행위를 2차원적 평면에 그림자처럼 투영시킨 것이 바로 화가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달리가 죽음을 피하기 위해 동면(冬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기금을 제공했다는 사실마저 소년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어쩌면 동면에 집착한 달리이고 보면 소년이 믿듯이 시간의 실체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살바도르 달리를 아세요?"
  소년에게서 노안(老眼)의 애수가 보였다. 열세 살짜리 소년의 해맑은 눈동자는 여전히 노안 깊숙이 숨겨진 채 반짝거리고 있었다. 내가 달리를 파시스트라고 한다면 그는 열렬한 파시즘 숭배자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대단한 독설가입니다. 재미있는 사람이지요. 자신을 지고한 돼지라 했어요. 돼지야말로 완전함의 상징이라면서 말입니다."
  소년의 얼굴 위로 엷은 미소가 피어났다. 어쩌면 그는 정말 돼지를 신격이 부여된 완전체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럴 땐 영락없는 소년이었다. 노인과 소년이 뒤범벅된 그에게서 나는 종종 노구 뒤에 감춰진 소년을 분리해냈다. 육체에 스며든 세월이 위선된 것이지 결코 그의 영혼마저 마모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는 소년이었다.  
 사자(死者)를 그려내겠다던 열병은 막상 소년과 만나면서 잦아들었다. 열병의 압박이 잠깐 수그러들었을 뿐인지, 소년에 대한 애착으로 열망이 변질된 것인지 나조차 알 수가 없었다. 영혼이 생동하는 엄연한 인간을 만나면서 사자의 얼굴을 그려내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죽음은 소년 가까이 머무르면서 언제든 소년을 덮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소년 곁에 있으면 시간의 화살이 소년의 몸통을 꿰뚫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언젠가 죽음으로 뒤덮일 소년의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나는 본의 아니게 호스피스 역할을 맡게 되었고, 소년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노구에 파묻힌 소년의 영혼을 발굴하는 고상한 작업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추레하게 늙은 노구가 벗겨지며 여느 소년을 만나는 것 같은 애틋함이 생겨났다. 그것이 너절한 노구가 드리운 그림자일지라도 나는 노구 속에 투영된 변색되지 않는 초롱초롱한 소년을 만났던 것이었다. 언젠가는 주검이 아닌 아름다운 복숭아 빛 피부와 촉촉한 눈빛과 얼음같이 새하얀 치아를 가진 소년을 만나게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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