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머티즘성관절염과 에이즈, 아토피와 천식, 알츠하이머와 당뇨.
언뜻 볼 때는 서로 간에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난 5월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가 밝혀졌다. 하버드대학교 대나-파버(Dana-Farber) 암 연구소와 미국 노틀담대학교 복잡계 네트워크 연구소의 공동연구 결과에 의하면 발병 유전자가 같은 질병은 서로 연관이 있다. 이러한 연관관계를 도식화하자 거대한 연결망이 드러났다. 

△ 복잡계 네트워크 방식의 최초 적용
이 연결망의 정확한 명칭은 ‘인간 질병 네트워크(The Human Disease Network. 이하 HDN)’다. HDN은 2만5000개가 넘는 발병 유전자와 지금까지 밝혀진 1300여개의 질병을 연결시켜 도식화된 하나의 망으로 나타낸 것이다. 질병을 서로 연결시키기 위해선 발병 유전자간의 연결유무 확인이 우선돼야 한다.

연구자들은 HDN구성 전에 발병 유전자 간의 연결고리를 밝히는 ‘질병 유전자 네트워크(Disease Gene Network. 이하 DGN)’를 먼저 만들었다. 발병 유전자가 점이고 이 점들을 바닥에 뿌렸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두 개의 유전자를 연결한다. 이 작업을 반복하다보면 유전자와 질병의 연결망인 DGN이 완성된다. HDN은 이를 토대로 연관된 질병과 질병을 연결시킨 결과다. 연구에 참여했던 고광일(이과대 물리학과)교수는 “이 연구는 질병을 복잡계 네트워크 방식으로 연결한 최초의 시도”라고 말한다.

연구자들은 HDN의 동일한 질병군을 알아보기 쉽게 색깔로 나타냈다. 간암, 대장암, 백혈병 등의 암은 청록색으로, 백내장, 야맹증 등의 눈병은 보라색으로 나타낸다. 같은 질병군에 포함된 병들은 발병 유전자가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가 복잡하게 얽혀 한데 모여 있다.

△의외의 질병끼리 ‘친’하다
HDN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밝혀진 1284개의 질병 가운데 70% 정도인 867개의 질병이 다른 질병과 최소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중 516개의 질병은 서로 얽혀서 거대 질병군을 형성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질병들이 병을 유발하는 유전적 요인들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것을 증명한다.

HDN에 따르면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질병끼리도 연결돼 있다. 알츠하이머의 경우 정신분열이나 노인성 치매 등 신경 관련 질병뿐 아니라 심근경색, 심장발작 등의 심장 관련 질병과 고혈압, 비만 등의 성인병과 연결돼 있다. 흔한 질병인 천식은 편두통을 비롯해 아토피성 피부염, 알레르기성 비염, 비만, 동맥경화 등 10개의 질병과 연결돼 있다.

이 결과는 한 질병에 걸리면 증상이나 발병기관이 전혀 달라도 연결된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천식에 걸리면 천식과 연결된 10개의 질병에 걸릴 확률이 건강한 사람보다 높은 것이다.

<용어설명>

창발현상(emergent behavior)
전체는 부분 합보다 크다는 말처럼 미시적인 부분의 각각의 특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전체로써 나타나는 복잡한 현상을 말한다.

복잡계 네트워크
복잡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 상호작용이 있는 요소끼리 이어 만든 연결망으로 복잡계의 총체적인 성격을 나타내준다.

공진화(coevolution)
다른 종(種)의 유전적 변화에 대응하면서 일어나는 어떤 종의 유전적 변화로 복잡계에서는 상위 시스템과 하위 시스템이 같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을 말한다.



△질병사회의 ‘부익부빈익빈’
HDN에선 소수의 연결고리를 갖는 질병이 대다수이고 많은 연결고리를 갖는 질병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는 복잡계 네트워크의 특성 중 하나인 부익부 빈익빈형 네트워크로 설명되며 멱함수 분포를 보인다. 소수의 ‘허브’가 유독 많은 연결고리를 가지는 반면 나머지는 아주 적은 수의 연결고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네트워크에서 하나의 허브가 타격을 받으면 이와 연결된 요소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HDN의 중요허브는 대장암으로 50개의 연결고리가 있으며 유방암이 31개로 뒤를 잇는다. 만약 대장암에 걸리면 대장암과 연결된 질병인 백혈병이나 유방암, 난소암 등이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 연결고리가 적거나 아예 없는 질병은 발병율이 낮기 때문에 치료법이나 연구법이 상대적으로 미흡해 희귀병으로 분류된다.

△HDN은 아직도 진행 중
현재 새로운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HDN에 꾸준히 보충되고 있다. 또한 DGN, HDN에 약(drug)의 작용을 통합한 ‘Drug Target Network’가 지난 <Nature Biotechnology> 10월호에 실렸다. 약의 효능과 질병 간 네트워크를 구성해 약을 섭취할 때 그 효능이 그 질병과 연관된 다른 질병에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 것이다.

약과 질병의 연결망을 조직한 결과, 대부분의 약이 연결고리가 많은 거대 질병군과 연결돼 있었다. 이 연구는 기존 사용되는 약에 노출된 유전자와 단백질이 무엇인지 쉽게 알려줘 내성이 생긴 병에 대한 신약 개발에 영향을 미친다. 고 교수는 “네트워크를 완성하면 질병을 정복하는 것에 한 발 가까워지게 될 것”이라며 “희귀병을 치료하는 신약개발이나 약의 부작용 연구에 응용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연구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손은혜 기자 thsmsp@kunews.ac.kr
고광일 교수(이과대 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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