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 1학년 때 학교성적은 좋지 않다. 1학기 때는 0.78로 학사경고를 맞았고 2학기 때는 2.0으로 학사경고를 겨우 넘겼다. 내가 이렇게 낮은 성적을 받은 가장 큰 까닭은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탓에 수업을 잘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시험 때만이라도 충실하게 준비를 했다면 좀 더 나은 점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험 때도 그다지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된 데는 고려대학교의 평가방법이 강제적이고 인위적인 상대평가란 것이 큰 몫을 했다.

고려대학교의 상대평가 방법은 수업 듣는 사람 가운데 누군가는 반드시 C나 D학점을 받게 돼있다. 내가 높은 점수를 받으면 나대신 다른 누군가가 낮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야만적인 제도 앞에서 고민했다. 고등학교 때도 그러지 않았던가, 몇 개 안되는 이른바 일류대학에 들어가려고 옆의 친구와 경쟁해야만 하는. 그 때 나는 친구의 고민에도 관심이 없었다. 또 내 등수를 위협할만한 친구들에게는 내가 아는 것을 알려주는 것조차도 인색했다. 나는 옆의 친구가 어찌됐든 오로지 나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쳤고, 그렇게 한 덕분에 다른 사람을 누르고 지금 이른바 일류대학에 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더 이상 그러한 경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취직으로 고민하는 다른 친구들이 좋은 점수 받으라고 내가 C, D학점을 깔아주자는 헌신적인(?)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이제 2학년이 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학교당국이 2003년부터는 교양수업까지 상대평가로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총학생회와 한마디 의논도 하지 않았다. 총학생회 집행부인 나는 학교본관으로 찾아가 담당자에게 따져 물었다. “학생들을 빼놓고 이렇게 마음대로 대학의 의사결정을 해도 되는 거예요?” 그러자 학교 담당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많은 교양수업이 학생들이 잘 들어가지 않는데도 모두 좋은 점수를 주고 있어서 더 정확하고 공정하게 평가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학교당국 말처럼 어떤 수업은 학점을 아무에게나 잘 줘온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도 그런 수업을 이른바 ‘전략과목’이르는 이름으로 좋아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지금의 상대평가란 제도를 써야만 바뀔 수 있을까? 이것은 교수 강사가 학생들을 학업 성취도에 따라 엄격하게 평가하도록 해서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러한 상대평가가 인간과 학문의 존엄성을 떨어뜨리고 우리사회를 서로 경쟁하는 야수들의 정글로 만드는 제도라고 본다. 우리는 정말 경쟁해야만, 그렇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누르게 되어있는 틀 속에 있어야만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것인가?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참된 학문이라면 그것은 결코 경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다. 참된 학문은 경쟁에 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 그 자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도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토론하고 공부해야 할 학문적 길동무다.

나는 이 야만적이고 더러운 ‘상대평가’제도에 맞서 싸우기로 했다. 교양수업 뿐 아니라 전공수업의 상대평가란 굴레도 걷어치우게 해서 앞서 말한 내 개인적인 고민도 해결하려 한다. 우리 모두 모이고 만나서 우리가 사는 곳의 제도를 야만의 논리에서 인간의 논리로 바꿔나갔으면 좋겠다.

덧붙여 학교 당국에 말한다. 내 글에 이 지면을 통해 성실하게 답하라. 우리가 사는 곳의 제도를 바꿀 때는 공론의 장에서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지 토론한 다음 함께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상대평가 폐지를 위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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