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조그만 나라, 오만의 신도시 설계를 맡게 됐다. 자연히 없는 시간을 쪼개어 중동에 가야할 일이 잦아졌고 매번 짧은 시간 안에 강도 높은 일을 소화해야 했다. 빡빡한 일정을 마치면 피로도 덜고 친목도 다질 겸 그 곳 사람들과 회식을 하곤 했는데, 회식을 하면서 현지인들이 와인을 홀짝거리는 걸 보게 될 때가 있었다. 중동 사람들은 당연히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을 상대로 판매한다고는 하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버젓이 돼지고기를 파는 가게를 보면서 중동의 변화 속도에 당혹감을 느꼈다.

최근 들어 중동에서는 오랜 기간 지속돼 왔던 금기들이 하나씩 깨지고 있다. 이런 변화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깨어질 금기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됐으며 어떻게 여태껏 지켜질 수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곤 한다. 이러한 의문이 들 때마다 두루뭉술한 답이 떠오르는데 이를 곰곰이 되짚어 보면 학창 시절에 재밌게 읽었던 한 권의 책이 열쇠를 쥐고 있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문화인류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다.

<문화의 수수께끼>, <식인과 제왕>과 더불어 문화인류학 3부작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이 책은 “왜 중동에서는 돼지고기를 못 먹게 하는가?”, “왜 말고기는 일부 나라에서만 인기가 있는가?”, “왜 우유는 아시아인보다 유럽인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가?”, “왜 애완동물을 먹으면 안 되는가?” 등 음식에 대한 의문이지만 결국은 그와 깊이 관련된 문화와 환경을 묻는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질문과 주제들은 여러 지역의 음식 문화, 특히 다른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기이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음식 문화가 나름의 이유를 갖고 형성된 것이라는 걸 알려준다. 또한 음식에 대한 금기가 그 지역이 갖고 있는 환경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도 일깨워준다. 예를 들어, 중동에서 돼지고기가 금기시 되는 이유는 비가 드물고 기온이 높은 중동의 환경적 요인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곡물을 먹여야하는 돼지는 풀을 먹고 자라는 양, 염소 등과 비교해 볼 때 지극히 비생산적인 가축이기 때문에 아예 돼지를 혐오스러운 동물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책에서 직접 설명하고 있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중동에서 술이 금기시되고 있는 이유도 포도와 곡물이 자라기 어려운 중동의 환경 때문일 것이란 추측을 해본다.

물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중동 지역에 살았던 종족인데도 유대인들은 낙타를 먹는 것을 금기시했고 이슬람권에서는 허용됐다. 저자가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는 기후, 경제성, 혹은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집착 등의 방법으로는 이러한 상이한 금기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식습관이라고 여기고 지나쳐 버리기 쉬운 것들에 대해 합리성을 토대로 생각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사회적 금기 역시 결국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앞으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할 우리 학생들에게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통찰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을 권한다.

김세용(공과대 건축학과) 교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The sacred cow and the abominable pic : riddles of food and culture)
저자 : 마빈 해리스
역자 : 서진영 (뉴욕대 문화인류학) 박사
출판사 : 한길사
출판일 : 1992.12.25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