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차관급고위직에 올라 산림청장을 역임한 신순우(법학 61)교우를 만났다. 사춘기시절 기차사고로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를 잃었지만 장애를 딛고 일어나 30여년 간 청렴한 공무원으로 재직한 신순우 교우의 공직인생과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산림청장 취임식이 특이했다고 들었습니다.
산림청장으로 내정됐을 때 모함이 심했어요. 심지어 ‘다리 장애로 산 근처에도 못갈 사람이 어떻게 산림청장을 하겠느냐’는 인신공격적 비판 기사가 나온 적도 있었지요. 그래서 산림청장 취임식을 일반 대강당에서 하지 않고 산 중턱에서 했어요. ‘장애인이라 못한다’는 편견을 불식시켜야겠다는 생각에, 한창 숲가꾸기 사업중이던 대전 대둔산에서 인부들과 일부직원들이 참석한 상태에서 조촐하게 취임식을 가졌죠. ‘장애인’ 산림청장 취임식이 이례적으로 산에서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언론들이 모였고 짓궂은 기자들은 내 모습을 땅바닥에 카메라를 두고 찍었어요. 내가 잘 걷는지 보려고 발을 중심으로 찍은 거죠. 나는 당당하게 취임식을 가졌고 인부들과 함께 숲가꾸기 작업까지 하고 내려왔죠. ‘장애인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많이 받으셨는지.
대학입시 때 서울대 치대에 붙었는데 면접과 신체검사에서 ‘다리장애 때문에 서서 진료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합격됐어요. 그래서 재수를 하면서 신체검사에서 떨어지지 않을 학과를 찾아야했죠. 상경대 쪽에 관심이 있었지만 당시 상경계는 대부분 금융기관 등 서비스 업종으로 취직돼 장애인을 기피했어요. 그래서 난 법대로 진학해 고시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죠.
대학졸업후 1969년 행정고시를 합격해 농림부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공직에 있으면서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밀리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등 불이익을 많이 받았죠. 가장 억울했던 기억이 생각나네요. 농산물유통국장으로 승진되기 전 해외주재관제도를 통해 미국에 농무관으로 가는 것을 희망했어요. 당시엔 내정까지 됐지만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되는데 장애인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경쟁자들의 반대로 결국 파견되지 못했지요. 실제로 해외주재관이 되는 데에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쉬워요.

30여년 공직에 있으시면서 개인적인 신조가 있으시다면.
1970년부터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다짐한 것이 내 공직 인생의 신조가 됐어요. ‘청렴결백한 공직생활을 하고 명예롭게 퇴직하는 것’이었지요. 공무원이라면 당연할 것 같은 신조지만 공직생활에는 유혹이 너무도 많아요. 예전에는 공무원이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다는 이유로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그만큼 실제로도 뇌물을 주고받는 일도 많이 행해졌지요. 한번은 부하직원이 홍삼이라며 선물했는데 열어보니 돈보따리였어요. 승진에서 유리하려고 내게 보내온 뇌물이었죠. 나는 오히려 그가 공무원으로서 소양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승진시키지 않았어요.
나보다 직책은 낮지만 생활이 경제적으로 훨씬 나은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도 차관급공무원을 지낸 사람치고 이렇게 검소하게 사는 사람은 드물걸요.(웃음) 고위직에 있었지만 딸아이 세명 모두 유치원도, 피아노학원도 못보내서 마음이 아플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재직중에 일체의 부정한 행위를 하지않았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국가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것, 농어민들을 위해 청렴하게 일했던 것에 대한 보람을 충분히 느꼈지요.

4월 20일로 정해진 ‘장애인의 날’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날이므로 당연히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장애인은 사회로부터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필요로 하지요. 하지만 일년에 딱 하루, 정해진 날을 기념하고 행사에 치중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지속적인 관심과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에게 혜택제공과 생활보호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해요. 현재 기업과 정부기관에서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전체 사원중 2%이상 채용하도록 돼있는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사기업의 경우 벌금을 내기도 하는데 오히려 정부기관에서 이를 잘 수행하지 않아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무관심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한 때, ‘장애인’, ‘장애우’등 명칭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장애인관련 단체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떤 독립단체에서 ‘장애우’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장애인’ 그대로 부르는 게 맞아요. 장애우라고 하면 오히려 ‘다름’을 인정해 과잉배려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거든요. 장애인을 별종으로 보지 말고 똑같이 자연스럽게 대하면 되지요. 그리고 무심코 장애인의 반대를 ‘정상인’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장애인의 반대는 ‘비장애인’이에요. 장애를 가진 것이 ‘비정상’은 아니잖아요.

‘장애인 산림청장’, ‘최초 장애인 차관급공무원’등 ‘장애인’이라는 수식어가 긍정적인 의미로라도 부담되거나 불편하지는 않은지.
전에 없던, 특이한 경우에 대한 주목이라고 느낍니다. 언론에 처음 주목을 받았을 때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더 이상 거부감은 없어요. 한평생 내가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왔으니까요. 그리고 한국사회의 많은 장애인들에게 내가 귀감이 되고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저에게도 긍정적이고 보람있는 주목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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