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식을 축적한 이래로 가장 신비한 현상, 즉 과학적으로 추론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중 하나는 생명체의 물질대사와 죽음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체의 물질대사(metabolism)에 의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성장, 번식하는 물체를 생명체라 하며 이러한 현상이 멈추는 것을 죽는다고 한다.

자연현상은 근본원리, 즉 과학법칙을 찾아내고 그로부터 현상을 설명하는 환원주위적인 접근 방법을 토대로 설명된다. 대표적인 예가 고전역학으로 불리는 뉴턴의 역학체계다. 뉴턴은 근대 과학혁명의 시발점이 된 코페르니쿠스 지동설과 갈릴레오의 실험적 관찰을 토대로 천체의 운동과 같은 무생물체의 운동현상을 설명하는 만유인력 법칙, 운동법칙을 정립했다. 그렇다면 ‘생명’도 이러한 환원주의적 접근방식에 의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생명이란 무엇인가 :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본 생명현상>은 생명현상을 물리, 화학적 원리를 배경으로 환원주의적인 입장에서 설명을 시도한 매우 중요한 책이다. 책의 저자인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는 모든 물체를 이루는 기본 입자인 원자가 뉴턴의 역학체계로 설명할 수 없음을 처음으로 인식한 물리학자다. 그는 기존의 역학체계를 대체하는 새로운 양자역학의 틀을 만들었고 그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생명체는 왜 수많은 단위입자, 즉 원자로 구성돼 있는가’란 의문으로부터 시작해 통계역학적 관점과 엔트로피, 양자역학, 유전자의 화학적인 관점 등의 물리학적 또는 화학적 기본 원리를 생명체에 적용한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 태생인 슈뢰딩거가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아일랜드에 갔을 때 트리니티대학교의 더블린고등연구원에 있으면서 대중을 위해 강연했던 내용을 엮어 출판한 것이다. 따라서 책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깊은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였으며 분량도 적어 단숨에 읽어내려 갈 수 있다.

책이 발간될 당시는 유전자가 DNA 이중나선 구조로 구성돼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훨씬 전이었지만 필자는 이와 관련된 암시를 하고 있다. 상당한 크기의 복잡하고 견고한 분자가 유전의 정보를 전달할 것이라는 설명이 그 예다. 후일 DNA가 유전정보를 가진 이중나선 구조의 거대한 분자임을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왓슨과 크릭은 이 책이 연구에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 20세기 후반 분자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로 생리현상을 설명하는 분자생물학이 생물학의 주요 분야가 됐는데, 이 책은 학계에 분자생물학의 중요성을 제기한 책이기도 하다.

슈뢰딩거는 에필로그에서 당시의 과학적 지식으로 해답을 완전하게 제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철학적인 언급도 하고 있다. 자신이 물리적 화학적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순수한 기계라고 선언하고 의식의 주체로서 자신에 대한 괴리를 성찰한다. 이 책이 발간된 지 60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도 아직 생명현상은 물리학이나 화학적 원리에 의하여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연구 과제를 제시하고 있고 과학자나 철학자에게 계속 영감을 불어 넣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한 과학적 지식보다는 학문을 연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전공에 상관없이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는 모든 학생이 읽고 영감을 얻었으면 한다.   

전승준(이과대 화학과) 교수

<생명이란 무엇인가 :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본 생명현상(What is life?: The Physical Aspect of Living Cell)> (원서 1944 first publish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출판사 : 한울
출판년도 : 2005년(중판 5쇄)
저자 : 에르빈 슈뢰딩거
역자 : 서인석. 황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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