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세계 대전 이후 소비에트연방의 몰락까지 세계 질서에서 미국과 유럽은 하나의 이해를 가진 우방이었다. 소비에트연방에 대항하는 단일한 군사 협력 즉 나토는 다른 모든 질서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가지는 것이었고 이것을 주도하는 국가는 미국이었다. 철의 우방으로 불리던 질서들이 이라크 문제라는 하나의 암초 앞에서 이제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이 국면의 성격이 외교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성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의 배후에 석유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가 있음은 이미 보도를 통해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유럽의 중요 매체들은 이 전쟁의 배후에 유로화의 강세와 달러화의 약세, 그리고 월가 중심의 단일 금융시장이 프랑크푸르트라는 새로운 강자의 등장으로 양분되고 있는 사정을 등을 제시하며 또다른 경제적 이유가 있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세계 질서의 변화가 경제적인 이해를 달리하는 순간 질적으로 상이한 국면으로 이동했음은 기간의 역사를 통해서 누누이 증명된 바가 있다. 

이런 까닭에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는 미국의 행동에 유엔을 통해 일회적이거나 타협적으로가 아닌 근본적으로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보수파들은 지난 전쟁에서의 은혜를 들먹이며 프랑스와 독일에 대해서 배은망덕이라는 소리를 서슴치 않고 있으며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세계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책임을 자임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이와 같은 국면은 이제까지의 세계 질서를 고려해보면 가히 파격적인 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적이었던 러시아, 중국과 맹방이었던 프랑스, 독일이 합세하여 미국의 단일 패권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과연 일시적이거나 순전히 인도적인 측면에서만 발생하는 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제 한국의 정부와 중요 의사 결정 주체들은 고민과 더불어 답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파병은 지금까지의 한, 미, 일 관계로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문제는 세계적으로 국제 관계의 지도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정부가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냉철하게 판단하지 않고 관성에 의해 이번 파병을 결정한 것이라면 정부의 태도는 지극히 무책임한 것이다.

이미 세계 질서는 베트남전과 비동맹 외교의 대두, 소비에트연방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궤적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변해온 것이 사실이다. 안보의 개념 또한 과거와는 다르게 군사적인 성격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즉 경제와 환경, 인권 같은 것을 동시에 존중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양극 시대’에서 ‘다극 시대’로의 변화라고 지칭한다.

노무현 정부 또한 이런 시대의 변화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지금까지는 이해되어 왔다. 이런 이해는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의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핵에 대해서 다른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북핵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순전히 자주권에 대한 생각만은 아니었으며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이런 노무현 정부가 파병의 문제에서는 지극히 과거적인 인식과 관성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으며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보인다. 만약 북핵을 위해서 이라크 전에서는 양보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어리석은 선택이다.

지금 벌어지는 국제적 갈등은 미국의 단일 패권에 대한 불신이며 한국이 북핵에서 주장하려는 것 또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지나친 일방성에 대한 견제의 성격을 담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정말 제대로 북핵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 단일 패권에 대한 국제적인 저항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 옳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파병을 하지 않아야 하며 미국이 행사하는 단일 패권과 일방성에 대한 비판을 일관되게 수행해야 한다.

오늘의 파병은 내일 강화된 단일 패권이며 내일의 단일 패권은 북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에 가장 치명적인 장애임을 노무현 정부는 알아야 한다. 외교는 관성이 아니다. 외교는 국제 질서의 동태적 변화에 대한 적극적 참여이며 국익과 보편적 세계의 이익을 위한 성실하고 단호한 노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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