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가 곧 즐거움인 시대다. 공포의 사전적 정의는 ‘괴로운 사태가 다가옴을 예기할 때나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때 일어나는 불쾌한 감정을 바탕으로 한 정서적 반응’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공포를 즐기고 소비한다. 공포가 이미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된 것이다. 공포 코드는 영화, 연극, 문학 등과 접목해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공포 문화콘텐츠의 대표적인 장르는 영화다. 1990년대에 헐리웃 공포영화의 인기와 함께 한국에서도 매년 여름 공포물이 쏟아져 나왔지만 올해는 공포영화의 침체기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개봉작이 적다. 문화평론가 김헌수 씨는 “이는 간접적 체험에만 머물러있던 영화, 즉 ‘미디어공포’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연극계에선 공포물이 주가를 높이고 있다. 올 여름에만 대학로에선 <THE 죽이는 이야기> <혼자가 아니다> <오래된 아이> 등의 공포연극이 막을 올렸다. 연극에서는 영화의 한계를 넘어 관객들이 배우를 통해 공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공포문학은 공포영화나 연극처럼 시·청각적 자극이 아닌 독자의 ‘상상력’을 적극 이용한다. 놀이공원에 귀신의 집 역시 공포를 소비하는 대표적인 예다.  

  공포가 문화콘텐츠로 자리잡게 된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공포문화를 즐기는 심리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 중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공감하는 분석은 ‘공포문화는 공포가 아니기 때문에 즐긴다’는 것이다. 권정혜(문과대 심리학과)교수는 “사람들이 공포를 즐기는 이유는 해당 공포물이 이미 ‘안정적’이라는 것을 당사자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포물의 공포는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안정적인 선에서 단순히 오싹한 느낌을 주는데 그치므로 사람들이 공포문화를 즐기고 향유한다는 것이다.

  한편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공포문화의 성행을 ‘금기로부터의 해방감 및 대리만족감’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통제된 상태에서 벗어날 때 해방감을 느끼는데 현실에선 맛볼 수 없는 금기와 통제에 대한 해방감을 공포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김 씨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이나 <쏘우>처럼 피가 난무하고 신체가 절단되는 잔혹한 슬래셔 영화의 경우 인간으로써 지켜야 할 도덕적·윤리적 선을 넘어 관객에게 충격과 함께 금기에 대한 해방감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공포에서 벗어난 후의 안온함과 안정감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공포소설작가 이종호 씨는 “공포에서 벗어나면 상대적으로 현실이 안전하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며 “자극적인 재미와 그 후의 심리적 안정감이 공포를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생물학적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인간은 공포를 겪으면 순간적으로 많은 양의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데, 호르몬 수치가 높아진 상태에서 공포라는 외부 자극이 사라지면 인간은 쾌감을 맛보게 된다.
  이외에 공포를 즐기는 문화를 하나의 놀이문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공포를 코미디, 멜로, SF 등 여타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공포라는 하나의 장르 그 자체로 바라봐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공포 코드는 현재의 콘텐츠에 머무르지 않고 그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오는 29일(화)부터 다음달 3일까지 대구에선 ‘대구호러공연예술제’가 그 예다. 예술제에선 공연뿐만 아니라 저승유람 테마체험, 무서운 이야기 경연대회 및 심야 호러트래킹 등의 직접적인 공포 체험도 가능하다. 대구호러공연예술제 관계자는 “공포를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하나의 ‘축제’로써 다함께 여름철을 시원하게 즐기고자 한다”고 말했다.

  마케팅에도 공포는 적극 활용된다. 금연 공익광고는 물론, 일반 CF에서도 공포를 소재로 한 ‘납량CF’가 등장한다. SK텔레콤 광고 중 ‘할인의 추억’은 음산한 분위기의 엘리베이터 안에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를 등장시킨다. 이내 공포를 코믹한 분위기로 풀어내지만 이 광고는 공포라는 소재로 기존의 CF와 차별화해 시청자의 시선을 끈다. 

  이밖에 사람들은 각종 공연이나 놀이공원의 수동적인 경험을 넘어 직접 공포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국내에서 제일 큰 규모의 공포 체험 동호회인 ‘흉가 체험’ 회원들은 2002년 카페 개설 이후 오프라인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흉가를 직접 방문해오고 있다. 동호회 운영자는 “공포 체험을 단순히 오락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일종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흉가 체험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포소설 작가 이종호 씨는 "공포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잔혹·엽기와 같은 공포의 지엽적인 부분을 전부인 양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며 "공포를 하나의 장르로 선입견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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