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사를 살펴보면 교수의 참여는 정권 안팎 모두에서 이뤄졌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부터 현재까지 교수들은 다양한 통로와 방법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했다.

친일 및 도미유학자 출신 대거 정권에 참여. '3·15 부정선거' '4·19 혁명' 등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는 교수들이 궐기
미군정기와 이승만 정권기에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한 이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당시 미군정은 미국식 교육제도 및 가치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것에 주목했는데, 도미유학자들은 자신들의 도움이 근대국가 건설에 유용할 것으로 판단, 정권에 참여했다. 보성전문 교수였다가 남조선 과도정부 문교부장을 지낸 오천석, 이화여전 교수였다 미군정 후생부 부녀국장을 맡았던 고황경, 이승만 정권의 문교부 장관을 지낸 백낙준, 공보처장을 지닌 갈홍기, 김활란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한편 정권 밖에서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독재에 대항하는 교수 참여도 두드러졌다. 3·15부정 선거에 항거하기 위해 서울 내 대학 교수 258명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정·부통령재선거를 골자로 하는 시국선언문을 채택했으며, 4·19혁명으로 구속된 학생들의 즉시 석방을 요구하는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는 자유당 정권 퇴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군사정부 : 당시 정치에 참여했던 교수들을 흔히 '어용 교수'라 칭함. 대학 자율 침해와 학문 사상을 억압하는 데 저항하는 교수들의 움직임도 활발.
이후 집권한 군사정권들 또한 교수 출신을 많이 등용했다. 유신정권 당시 제12대에서 제14대 국무총리는 모두 교수 출신이었다. 전두환 정권에는 2명의 교수 출신 국무총리가 있었으며, 노태우 정권에선 5명의 총리 중 4명이 교수 출신이었다. 정태헌(문과대 한국사학과)교수는 “정책을 운영해 나갈 사람들을 지식인 가운데서 뽑아 정권에 대한 정통성을 잇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석했다.

이 시절 주목할 점은 당시 정권에 참여했던 교수들을 흔히 ‘어용 교수’라 칭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이념을 입법 활동에 구현하기 위해 구성된 ‘유신정우회(약칭 유정회)’엔 △신범식(공보부·경북대) △김기형(과기처·대구대) △이해원(보건사회부·성균관대)교수 등이 활동했다. 또한 유신헌법의 개정과 정당성을 알리는데 서울대의 △갈봉근 △한태연 △박준규 교수 등이 앞장서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때 정치의 틀을 강압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구성된 국가보위입법회에도 다수의 교수들이 참여했다.

이에 반해 대학자율 침해와 학문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교수들의 움직임도 있었다. 1971년 정부의 정치적 간섭과 관료적 운영으로부터 대학의 자주성을 보호하려는 국공립대학 교수들의 ‘학원자주화선언’, 유신체제 하 전남대 교수들의 ‘우리의 교육지표선언’은 박정희 정권의 교육 이념이었던 국민교육헌장을 전면으로 비판했다. 이는 전국의 지식인과 사회단체의 지지를 받았으며, 1979년 유신체제의 종언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1987년 전두환 정권의 ‘4·13호언조치’에 맞서 전국 48개 대학, 1513명의 교수들이 이에 반대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으며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역칭 민교협)’을 창립했다.

문민정부: 본격적으로 '폴리패서' 용어 등장, 문민정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해석

군사정권 이후 출범하는 정권들에선 교수의 참여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진다. 문민정부는 과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교수들을 대거 등용했다. 문민정부 당시 교수 출신 장관은 17명으로, 김대중(13명) 노무현(13명) 정부 때보다 많다. 일각에서는 이를 “문민정부라는 것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국민의 정부: 초대 내각 22명 중 10명이 관료인 내각

교수의 참여가 두드러지지 않았던 국민의 정부 이후 참여정부는 관료 중심의 내각이었지만 교수의 참여 역시 활발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386운동권 출신과 교수 출신 사이의 대립이 많아 교수 출신 장관들이 중도 사퇴하는 사례가 많았다. 한편 지방균형발전정책에 의해 지방대 교수들이 이전에 비해 대거 발탁됐다는 점과 초대 내각에서도 고졸 및 지방대 출신을 장관으로 임용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참여 정부: 386 운동권 출신과 교수 출신 사이 대립이 잦아, 지방 균형 발전 정책에 의해 지방대 교수들 대거 발탁

한편 이번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선 전부터 교수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대선 전 ‘선진경제 도약을 열망하는 지식인 1000인 선언’에서는 지식인 1016 중 643명이 교수였다. 또한 첫 내각에서는 △김도연(교육과학기술부·서울대) △백용호(금융감독·이화여대) △김성이(보건복지가족부·이화여대) △이영희(노동부·인하대) △유인촌(문화체육관광부·중앙대)교수 등 현직교수 출신이 많아 ‘교수 내각’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대선 전부터 교수의 활동 활발. 초기 내각에서도 현직 교수 출신이 많아 '교수 내각'이라 불려
한국정치사에서 나타나는 교수의 참여에 대해 홍성태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은 “서구는 정치인도 전문가로서 확립돼 있는 반면에 현재까지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지적 전문가로서의 교수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역할이 중요해져 '전문가 교수’에 대해 국민들이 엄정하게 평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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