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의 통일은 다양한 형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현대세계사에서 통일을 이룬 사례는 베트남, 예멘, 독일이 있다. 베트남은 무력통일의 사례다. 예멘은 합의통일이 결국에는 무력통일로 종결되었다. 독일은 서독헌법인 ‘독일연방기본법’ 제23조에 따라 동독이 서독에 통합된 흡수통일이다. 이론적 차원에서 통일의 유형을 구분할 경우, 어떤 가정과 조건, 어떤 변수를 설정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냉전구조가 해체되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1990년대에 여러 통일시나리오가 연구되었다. 각 연구가 상정한 변수에 차이가 있으나 결국 ‘합의형’, ‘흡수형’, ‘전쟁형’의 세 유형으로 모아진다.

첫째, 합의형 통일은 평화적 남북관계 개선과 점진적 통일을 상정하는 경우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가운데 교류·협력을 활성화하여 사실상의 공동체를 형성한 뒤에 합의에 의한 통일을 성취하는 형태다. 통일비용을 상대적으로 축소할 수 있고 통합과정에서의 부작용과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상적인 유형이다. 합의형 통일은 개혁·개방정책의 성공적 추진을 통한 북한체제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둘째, 흡수형 통일은 동서독의 사례를 상정한다. 사실상 북한이 남한체제에 흡수됨으로써 통일이 성취될 것이라고 본다. 이 유형의 통일 방식에서도 북한체제의 개혁·개방으로의 변화가 전제된다. 또는 북한체제의 내구성이 한계에 봉착하여 붕괴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일정한 과정을 거쳐 결국 남한 체제로 흡수되는 형태의 통일이다.

셋째, 전쟁형 통일은 남북한이 무력충돌의 발생으로 어느 일방이 타방에 점령당함으로써 통일이 이루어지는 유형이다. 그러나 전쟁형 통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또한 현실적으로도 배제되어야 할 유형이다.

각 유형별 또는 유형 간에도 통일의 실현 가능성은 시간적 조건, 상황적 조건 등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전쟁형을 제외하면 전문가들 간의 견해에 차이가 있으나,  ‘붕괴 후 흡수형’ 통일이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합의형 통일은 남북 간의 공존과 통합의 과정이 없이는 실현이 어려우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데에 의견이 다수다. 합의형은 가장 이상적인 통일 유형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정치적 안정이 유지되면서 체제전환과 민주화의 달성을 전제로 할 경우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통해 체제전환을 이루면서 남북한의 지속적인 관계 개선과 평화공존체제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북한체제의 급격한 붕괴의 결과로서 나타날 수 있는 흡수형 통일은 불안정성이 높고 대처하는데 비용이 들지만 다른 유형보다는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변화를 보인 상황에서도 세 가지의 통일유형 중에서 그 실현 가능성의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안정적인 발전과 미래지향성, 북한체제의 변화 등에 따라 그 가능성 또한 변화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요인들이 통일에 영향을 미치는가. 국내, 북한 및 국제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그 하위 수준에서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대외관계 분야 등에서 구체적 요인을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국내 요인으로는 지도자의 통일 의지와 리더십, 통일에 대한 국민 여론과 의지, 통일추진 역량, 경제·사회적 부담 능력, 등이 있다. 북한 요인에는 지도자의 통일 의지와 리더십, 김정일 체제의 존속 여부, 이념?정치?경제?사회 등 제반 분야의 능력, 체제 개혁·개방 세력의 확대 가능성, 대량살상무기 문제 해결과 북·미 및 북·일 관계 개선, 중·러의 대북지원과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 정도, 대남 인식의 변화 등이 있다. 국제 요인으로는 한·미동맹의 견고성, 미국의 한반도 전략과 대북정책, 중국의 한반도 전략과 북한 지원, 일본과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 동북아 역학구조 등을 꼽을 수 있다. 국제요인에서는 특히 미국과 중국이 핵심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통일의 실현은 북한 내부, 국내, 국제요인 등이 유리하게 조성되어야 한다. 북한 내부 요인이 통일을 촉발하는 상황을 가져오더라도 국제요인이 부정적이거나 국내적 기반이 충분치 않으면 쉽게 달성할 수 없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통일은 대한민국의 헌법 이념에 기반한 통일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인간다운 삶을 가장 완벽하게 실현시켜주지는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가동되는 최선의 체제임에는 틀림없다. 흡수형 통일이 가장 실현 가능한 방식의 통일이라면, 통일 한국의 체제는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이다.  혹자는 남한체제의 장점과 북한체제의 장점을 혼합한 제3의 통일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현실 북한정치체제와 경제체제에서 장점이란 없다. 북한체제 수립 후 60년 동안을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권력을 독점하고 향유한 전체주의적 독재체제이자 ‘현대판 봉건주의체제’에서 장점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현재의 남북한 및 주변4국의 총체적 국력을 기준으로 향후 10년을 투사하더라도 통일한국의 총체적 국력은 여전히 주변4국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통일된 한반도에 대해 가장 첨예한 이해관계를 갖게 될 국가는 통일한국과 국경을 맞대게 될 중국이다. 만약 중국이 그러한 통일한국의 등장을 우려한다면 북한을 계속하여 완충지대로 삼으려는 정책을 견지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와 이념과 체제를 공유하며 사회문화적 가치에서도 공유점이 많다. 양자관계에서의 갈등 요인들이 이러한 것들을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러시아의 경우, 상충하는 점들이 있으나 통일의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중국의 협력을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통일과정에서 우리 외교의 핵심과제가 될 것이며, 따라서 이를 위해서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통일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또 그 기회가 올 때는 과감하고도 단호하게 잡아야 한다.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보자면, 통일은 현실의 문제이지 이상의 문제가 아님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글쓴이

박영호
미국 University of Cincinnati 정치학 박사(1988)
미국 Hudson Institute, Adjunct Fellow
(현)통일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장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