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인의 행선지

 

꿉꿉한 어깨에 얹힌 새벽,
1호선 지하철역 선로 위로 시간이 끌려간다
충혈된 눈들이 유리창 너머로 섬섬이 부서지고
몸뚱아리는 바퀴의 포물선 따라 점점이 사라진다
몸이 흔들리자 세상이 흔들리는데
노약자석 깊숙이
한 노인은 600년 된 백송처럼 머물러 있다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 天安…
그곳을 찾아 머물며 가는 걸까
한강둔치에 기대어 앉은 비둘기처럼
꿈뻑꿈뻑 응수하는 듯
노인도 자궁 속에서 자라, 감나무 가지 품안을 뛰어다녔겠지
땅바닥에 나동그라지지 않기 위한 중년의 초상이
레일 위 인류 사이에서 주름으로 남았다
구름이 밀려왔다 쓸려가며 회생하는 포말 위,
새해 달력 내음 나던 시절이
1월 첫 장 넘기듯 동공에 멈추다 흩어져간다
잃어버린 시간들이
주름 속에 알알이 박혀 있다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 天安…
그곳으로 가고만 있는데
노인의 종착역은 바람처럼 미끄러진다

시간이 선로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 시간의 유배를 모두 굴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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