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지난 9월 국내대학들의 경쟁력 강화라는 취지 아래 ‘대학자율화 2단계 1차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대학들은 이미 대학자율화 1단계를 거치며 입학전형과 관련한 권한을 상당부분 넘겨받은 상태며, 이번 2단계 추진안에 따라 △교직원 △학사운영 △교육시설 △학생정원 항목 등에서 더 자율적인 대학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자율화 2단계 추진안이 마무리되면 내년 초 국회심의를 거쳐 법안으로 통과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선 대학의 자율성을 두고 정부와 대학들 간의 주도권 다툼이 있어왔다. 정부가 대학에 간섭하는 주요한 명분은 바로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이다. 사회적 책무성이란 대학의 본질적인 기능인 교육·연구·사회봉사를 바탕으로 대학이 사회에 대한 일정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은 대학의 자율성과 상충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무성이 상충하는 모습은 대학들의 입학전형과정에서 흔히 나타난다.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를 뽑고자 하는 대학의 요구와 입시제도 운영의 투명성·신뢰성을 원하는 국민들의 기대 간에 종종 마찰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도마 위에 오른 본교의 ‘수시 2-2 전형 특목고 학생 우대’ 논란은 대학 입학전형과정에서의 자율성·책무성의 대립을 보여주는 대표적이 사례다.

현재 대학자율화를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자율화 움직임은 세계 교육정세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OECD 전문가평가단이 지난 2005년 제시한 ‘한국 고등교육분석 결과 발표’ 보고서에선 한국이 대학에 대한 규제를 자율화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를 위해 고등교육 관련 부처들 간의 정책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차별·경쟁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대학자율화 2단계 추진안은 교직원 분야에서 △국내교원의 외국대학 교수 겸직 허용 △재임용 계약시 직명별 근무기간에 대한 지침 폐지 △교육·지도 전담교수 및 산학협력 전담교수 허용 등의 내용을, 학사운영에선 △국내 대학간 공동학위·복수학위 허용 △2주 범위내 수업일수 단축 시 교과부 승인제 폐지 등의 내용은 담고있다. 그 외에 △경제자유구역·제주국제자유도시 등에 설립되는 외국교육기관의 경우 학교운영경비 중 일부 본국 송금 허용 △자체정원 조정시 교원 확보율만 전년도 이상 유지하도록 조건 완화 등의 변화도 예상된다.

대학가에선 대학의 자율적인 운영권이 확대된다는 측면에서 추진안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교원 확보율만 전년도 이상 유지하면 자체 정원 조정 가능 △전임강사 제도 폐지 △국내대학간 공동 학위과정 설치·운영 근거 마련 등의 대학자율화 2단계 추진안 항목을 두고 실제 반영과정에서 차별과 경쟁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입학정원을 자체 조정할 때 △교원 △교사(건물) △교지 △수익용기본재산 학보율을 전년도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교원 확보율만이 의무사항이 된다. 이에 일각에선 인기학과의 정원을 늘리고 비인기학과나 기초학문 분야가 퇴출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본교 학적·수업지원팀 유신열 과장은 “현재로선 학과 조정이나 수업일수 조정 계획이 없으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연제호 대학원총학생회장(이하 원총회장)은 “일부 단과대에서 시행했던 학부제를 생각해보면 인기학과로의 편중현상은 본교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대학자율화 정책으로 인해 경제적 가치가 큰 학과들만 지원하는 분위기가 조성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강사들의 사기 저하를 막자는 취지에서 나온 전임강사 제도 폐지에 대해선 오히려 ‘시간강사를 더욱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대학교원 체제에서 교수로 임용되기 전에 거치는 정규직 직책인 전임강사가 사라지고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의 3단계화되는 과정에서, 전임강사가 조교수 대신 시간강사로 편입 운영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본교 홍후조(사범대 교육학과)교수는 “열악한 환경에 있는 대학들에선 그런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이미 전임강사제가 거의 운영되지 않는 본교의 경우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교무지원팀 이주리 과장은 “명칭만 폐지되는 것인데 문제가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본교에서 적절한 운영 체계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대학간 공동학위과정 설치·운영에 대한 근거 마련과 관련해서는 학내 구성원들 대부분 ‘취지 자체는 좋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방대학들이 서울지역 대학들과 공동학위 협정을 맺으려 하는 등 대학의 수도권 편중 현상이 야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민환 교수의회 의장은 “공동학위제의 취지는 좋지만 대학구조가 서열화돼있는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실효성을 거둘지 의문”이라며 “일단 지방 및 수도권대학에 입학한 후 상위권이라 불리는 대학의 졸업장을 따는 ‘학력세탁’이 횡행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연제호 원총회장은 “최근 본교가 수업개방을 했을 때 본교생들의 반발이 있었다”며 “공동학위제 역시 우선 제도적으로 수업 및 강의실 운영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학생들의 반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홍 교수는 “대학들에게 자율성이 얻어지는 만큼 구체적인 시행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려되는 부분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교 측, ‘좀 더 풀어달라’
대학자율화 2단계 추진안이 국회를 통과해 법안으로 확정되면 본교는 정부에서 내려온 지침에 따라 이번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관련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따라서 빠르면 내년 봄학기나 가을학기부터 대학자율화 2단계 추진안이 현실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학자율화 추진안에 대해 본교 구성원들은 ‘많이 개선됐지만 좀 더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본교 교무지원부 이주리 과장은 “각 대학들이 요청했던 부분들이 2단계 추진안에 반영된 것이라 전반적으로 만족한다”며 “미처 반영되지 못한 부분은 대학자율화 3단계 과정에서 또 논의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또한 본교의 한 교직원은 “과거에 비해 정부의 규제가 많이 풀어지긴 했지만 정작 대학 입장에서 풀어주길 바라는 3불 정책 등 아직도 실질적인 부분에 있어선 간섭이 계속되고 있다”고 불만을 말하기도 했다.

신정철(서울대 교육학과)교수는 논문 ‘대학의 자율성에 관한 정부 및 대학 간의 인식 차이’(2007) 를 통해 정부와 대학 간 갈등의 원인을 서로의 인식차에서 찾았다. 논문에서 신 교수는 ‘정부가 절차적 규제를 상당 부분 자율화하였다 하더라도 대학 구성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정부간섭이 줄어들지 않았다면 대학들은 자율성은 낮다고 인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학자율화 2단계 추진안에 따라 외국대학의 국내 설립 가능성이 높아진 것에 대해 ‘교육 수출은 막고 수입만 장려한다’는 비판도 있다. 본교 기획평가팀 최성수 과장은 “‘경제특구 내 외국대학에 대해 수익금 일부의 본국 송금 허용’조항으로 인해 외국대학의 국내 설립이 쉬워졌다”며 “하지만 정부는 국내대학의 해외진출은 잘 허용해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부산대의 경우, 지난 1월 싱가포르 사립 교육기관인 ITC로스쿨에 ‘국제 해양통상법’ 석·박사 학위 과정을 수출하기로 가계약을 맺었으나 당시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과학기술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해외에 대학원 과정을 개설하면 정부가 현지 교육의 질을 감독·관리할 수 없어 안 된다는 이유였다. 2010년까지 LA에 석사과정을 개설하려고 했던 본교의 LA캠퍼스 추진 사업 역시 현재로선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민환 의장은 “정부는 국가 주도적 교육관을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며 “대학의 활로는 대학 스스로 찾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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