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학부를 졸업한 A양은 취업을 하지 않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노동 시장으로 바로 뛰어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 졸업 후에도 사회로 나갈 결심이 서지 않으면 유학을 떠날 생각이다.

사회·심리적으로 모라토리엄(Moratorium)은 육체적·성적 측면에서 제 구실을 할 수 있지만 사회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 지불을 유예하는 청소년기를 정의하는 용어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성인기 이후로 연장하는 경우까지도 모라토리엄으로 포함하고 있다. 휴학을 하거나 학문적 목적 없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양상도 모라토리엄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학교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사회인이 돼야 하는 책임을 잠시 유예하는 것이다.

모라토리엄 증후군과 유사한 용어론 IMF 시기에 회자된 '캥거루족'과 2000년대 초반의 '피터팬 증후군'이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용어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캥거루족은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어려움'을 중심에 두고 있으며, 피터팬 증후군은 심리적으로 '어린 시절에 머물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모라토리엄 증후군은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는 측면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모라토리엄 증후군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구성원에게 발달과업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모라토리엄 기간은 사회가 발달할수록 길어진다. 이러한 예는 오늘날과 달리 산업사회 이전엔 청소년기의 개념이 불분명했으며, 청소년기를 거치지 않고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행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성원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생존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면서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사회에 나가고자 하는 유예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입시 공부에 매진하면서 정체성 탐색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던 것도 모라토리엄 증후군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유희정(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교수는 "청소년기 시절에 다양한 정체성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공통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모라토리엄 증후군은 단순히 '심각한 문제' 혹은 '개인의 나약함'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유 교수는 "모라토리엄 증후군은 개인의 문제 이전에 사회적 문제"라며 "사회의 발달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라토리엄 증후군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체성의 확립이 해법이라 말한다. 사회심리학자 에릭슨(E. Erikson)은 '정체성 문제가 해결돼야 성인기로 안정적으로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 교수는 "무엇이 나를 몰입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며 "사회진출에 대한 불안감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데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가 원하는 것에 나를 맞추려는 생각보다는 내가 사회 안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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