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사랑한단 말인가, 비범한 이방인이여?
—구름을 사랑하노라… 흘러가는 구름을…저기… 저곳에… 경이로운 구름을!
보들레르,「이방인」


1) 이방인의 눈으로서 카메라-눈
 
‘나’를 버리는 에로티즘의 눈길로 어둠 속의 움직임을 쫓는 시네마토그라프는, 기술 문명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감수성에 신선한 자극을 주며 새로운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루이 뤼미에르조차 기대할 수 없었던 알렉산더 페트로브 Alexander Petrov의 󰡔노인과 바다󰡕(painted on glass, 20m, 1999) 같은 작품의 출현이 말해주듯, '라 시오타역에 들어오는 열차'로서의 시네마토그라프의 여정은 누구도 예견할 수 없는 선로 위를 달려왔다. 이방인 뫼르소처럼 새로운 세계로 출발을 꿈꾸며 시작된 시네마토그라프의 후예들은 음악의 뮤즈 에우테르페 Euterpe, 무용의 뮤즈 테르프시코레 Terpsichore 같은 예술의 정신과 영감을 이끄는 자신의 뮤즈를 찾아 그 낯선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
뮤즈를 기리는 사원 museum로서의 시네마테크의 축성을 염원하는 진정한 시네아스트들은, 늘 ‘종합예술’이라는 가명 속에 다른 장르와의 혼합을 시도하는 영화계 혹은 '영화예술'이라는 사이비 간판을 내건 상업적 영화인들에 맞서 독자적이고 진정한 영화다움의 의의를 추구해 왔다. 투자자로서의 부친이 제안한 ‘정복자 domitor’ 대신 ‘시네마토그라프’라는 영사기 본래의 이름을 고집한 뤼미에르 형제, 에드가 알란 포의 소설에 버금가는 포토제니로 유럽 영화의 이미지 시대를 연 쟝 엡스타인(1897-1953), 인상파 회화에 버금가는 카메라 미학을 완성한 프랑스 최초의 니체 번역자 아벨 강스(1889-1981), 시적 리얼리티의 영화적 토대를 마련한 화가 르느와르의 아들 쟝 르느와르(1894–1979), 그의 조감독으로 네오리얼리즘의 서정성을 이룩한 공산주의 백작 루키노 비스콘티(1906-1976) 나아가 설명이 필요 없는 잉마르 베리만,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같은 시네아스트들 덕분에 시네마토그라프는 예술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느 정도 담보하고 있다. 영화를 예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공로는 아마도 기존 장르에 안주하던 타성적 예술가들과는 달리 자신의 운명을 걸고 과감히 낯선 초행길을 선택한 이들 시네아스트의 몫으로 돌려야 하리라.


시인과 화가의 행로가 그러하듯 시네아스트의 초행길은 낯선 길로 열리고, 낯선 길 위에서는 누구나 이방인이 되기 마련이다. 낯선 길로 들어선 시네마토그라프, 그 낯선 길 따라 시네아스트들의 낯선 만남이 있다. 그 이방인들의 길을 따라 가며 만나게 되는 것은 이제는 잃어버린 일상의 낯섦을 재발견하는 예술가적 심정이다. 이것을 영사기ㆍ현상기ㆍ카메라로서의 시네마토그라프가 되찾아 내었으니 카메라-눈의 효용성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눈을 뜨게 하고 그 잃어버린 것을 찾아내리라는 기대감 속에 그것들을 생생하게 되살려 놓는 데 있다고 하겠다. 타르콥스키와 브레송의 위대함 역시 대부분의 영화인들이 간과해버리는 영화만의 특성을 뤼미에르의 초기 필름들에서 발견하고 그 예술 형식 의의를 기록으로 남긴 데 있다(󰡔봉인된 시간󰡕, 󰡔시네마토그라프에 관한 노트󰡕).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두 사람 모두 고국에서의 영화적 삶을 이방인으로 살아갔다는 것이다. 타르콥스키는 구소련 영화계의 이단아가 되어 망명자로서 파리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자신을 멘토로 부르던 이 러시아 시인-감독을 가장 훌륭한 벗으로 섬기던 브레송은 그 어떤 프랑스 영화 사조나 영화업계와 무관한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상하며 이방인으로 삶을 마감한다(브레송은 타르콥스키와의 만남의 계기가 된 칸느 필름 페스티발의 야연을 애꾸눈들의 왕국에 비유한 바 있다).


이방인이란 라틴 ‘extraneus'에서 유래한 말로 '외래의, 외국의, 외국인, 무관한, 권리 없는’ 등등 그 지역 출신이 아닌 사람 혹은 타지역과 관련된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이방인이란 자신의 고향에서 고향을 상실한 사람이며, 고향 상실은 곧 고향 말의 상실이라는 언어 상실로 이어진다. 예수가 고향 나자렛에서 환대받지 못한 것 역시 그가 고향 사람들과의 소통에 실패했음을 시사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의 소크라테스 역시 언어ㆍ장소의 상실에 시달리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테네 사람들이여…나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와는 참으로 이방인이라오. 만일 내가 아테네 사람이 아니어서 내가 자라난 곳의 방언으로 말하거나 그 고장 방식으로 말한다면 당신들은 나를 용서해줄 수도 있을 것이오.” 아테네 청년들을 현혹시켰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한 철학자의 죽음 이전에 이방인으로서의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내가 아닌 나’를 추구한 보들레르, “‘나’는 남이다”라고 고백한 랭보, 인간을 위한 ‘신의 죽음’을 고발한 니체의 광기에서 드러나듯, 시와 철학의 역사는 이방인들의 희생의 역사에 다름 아니기에 종종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이방인’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 보들레르의 산문시 「이방인」(󰡔파리의 우울󰡕), 「이방인」의 깨달음의 과정을 소설로 옮긴 무신론자 카뮈의 소설 󰡔이방인󰡕, ‘세상에 대한 다정한 무관심’을 여는 뫼르소의 시선을 영화로 각색한 비스콘티의 󰡔이방인 Lo Straniero󰡕(1967)󰡕은 모두 자신의 언어를 상실하고 낯선 일상의 공간의 의미를 재발견한 이방인의 독백인 것이다.

2) 카메라-눈은 시선의 전환을 요구한다, 비스콘티의  󰡔이방인󰡕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아센바흐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존재론적 기대감 속에 표현하듯, 󰡔이방인󰡕에서 루키노 비스콘티는 사회로부터 자신을 결석시키는 뫼르소의 의식의 흐름을 카메라-눈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방인의 눈으로서의 카메라-눈은 세상에 대한 이기적 무관심 속에 갇혀 살던 非이방인 뫼르소, 엄마의 죽음 이후 난생 처음 엄마를 생각하면서 세상의 이타적 무관심에 마음을 연 이방인 뫼르소. 두 뫼르소의 초상을 대비 시킨다. 카메라-눈은 이기적 무관심으로 아무 의식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뫼르소의 시선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마치 카메라-눈이 뫼르소에게 일종의 시선의 전환을 요구하듯이. 관습적 사유를 강요하는 신부와의 극렬한 논쟁을 벌인 뫼르소는 창문 밖에 빛나는 새벽 별을 보다 문득 죽은 엄마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크게 깨닫는다.
 

정말 오랜만에 처음으로 엄마를 생각했다. 왜 만년에 엄마가 '약혼자'를 골랐으며, 왜 새로운 출발을 즐기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별자리와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마주하고 나는 난생 처음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나를 열었다. 이 세상이 그토록 나와 닮았고 그토록 형제다움을 깨닫고서 나는 내가 행복했었음을 느꼈고, 또 여전히 행복함을 느꼈던 것이다.


카메라-눈은 뫼르소의 시선의 전환을 어둠 속에서 추적한다. 신부와의 격렬한 논쟁 후 홀로 남은 뫼르소가 창문 밖으로 새벽별을 바라보는 순간, 서서히 완전한 어둠으로 물들어 가는 공간 속에서 그의 하얀 얼굴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을 완전한 어둠에 가두면서 진정한 빛을 발하는 이방인의 탄생을 말하려는 듯이. 그러니 프루스트처럼 진정한 어둠의 의미를 깨달은, 식민지 태생의 자유인 카뮈를 지중해에 빛나는 찬란한 태양의 인간으로만 조명하지 말자. 일상적 어둠과 악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열어준 카뮈의 정신을 실존주의 혹은 부조리 철학의 틀에 가두지 말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작가의 사유를 관념적 용어의 틀에 가두는 것이야 말로 카뮈의 언어를 소통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스콘티가 그만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 카메라로 암시하고자 한 것도 바로 이방인의 이 소통 불가능이었다.


이렇게 촬영 감독 주세페 로투노는 소통불가능 속에서도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자신의 마음을 연 뫼르소가 느끼는 세상과 나와의 닮음, 그 형제다움을 어둠 속의 빛으로 전하고 있다. 하지만 느낌보다 지성을 내세우는 문단과 영화계의 카뮈 추종자들, 심지어 카뮈의 부인도 카메라가 의도하는 낯선 이미지의 근원적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던 것 같다. 비스콘티가 원하던 알랭 들롱 대신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를 기용하고, 카뮈 부인마저 소설적 내러티브의 충실성을 요구하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비스콘티는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후 비스콘티는 형식적 완성도면에서 자신의 영화들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이방인󰡕의 극장 상영 중단을 요구하게 되고 이후 유럽 관객은 이 필름을 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만다. 그 역시 영화계에서 소통 불가능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시선의 전환을 요구하는 카메라-눈은 우리에게 단순히 스토리 구성 요소로서의 이미지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눈은 이미지의 근원을 묻게 한다. 필름 위에 새겨지는 것은 단순히 어떤 이미지가 아니라 바로 이미지의 근원이다. 이방인의 표정, 독백, 동작 하나하나는 마치 소설가가 백지 위에 엄마, 나와 같음, 형제다움 등의 여러 단어들을 써 내려가면서 동시에 이러한 단어들의 근원을 묻는 것과도 같다. 왜냐하면 엄마는 하나의 단어이되 또한 하나의 실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화 이미지의 근원에 현실이 있는 것이다.

<이방인>에서 신부와 논쟁을 벌이는 뫼르소.

예술가들에게 현실은 언제나 신비스럽다. 예술가들에게는 사람이 사람으로 있는 것 자체가 신비스럽다. 빈센트의 자화상이 뿜어내는 투명한 눈빛처럼,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의 익명 신부의 정직한 눈빛처럼 뫼르소의 눈빛은 스크린의 틀을 통해 걸어 나와 이 신비로운 현실로의 동승을 권유하고 있다. 다정한 무관심을 향한 새로운 세상으로의 출발로 우리를 유혹하는 시네마토그라프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낯선 길로 달려가고 있다. 이 길은 경쟁의 길이 아니라 형제다움의 길이다. 어떤 낯선 형제와의 만남의 길로 시네마토그라프의 여정이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는 기술 문명의 산물으로서, 자신의 뮤즈를 찾아나서는 시네마토그라프의 길이기도 하다.

송태효(본교 레토릭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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