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혜진 기자)
학원이 즐비한 곳에서 단 한권의 문제지나 참고서는 물론 베스트셀러까지 팔지 않는 ‘어리석은’ 서점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여기, 부산의 인디고 서원이 그 ‘어리석은’ 서점이다.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은 ‘부산의 대치동’으로 통한다. 골목 사이사이로 학원이 즐비하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이들을 태워 나르는 차가 쉴 새 없이 오간다. 바로 이 가운데 인디고 서원이 있다. 부산에서 20년 가까이 청소년들과 함께 독서토론수업을 해 온 인디고 서원의 대표 허아람 선생님은 지난 2004년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을 모토로 인디고 서원을 열었다. 인디고 서원의 김미현 실장은 “‘인디고’는 쪽빛이라는 뜻으로 ‘쪽’이 주는 맑고 푸른 느낌과, ‘서원’은 서점이라는 뜻으로 책들의 정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디고 서원에서는 문제지나 참고서, 베스트셀러를 단 한권도 취급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획일적인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에서 벗어나 청소년들에게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사유가 가능하도록 하는 장이 되기 위해서다. 또한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 만든 베스트셀러는 인디고가 지향하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취급하지 않는다. 대신 서가에는 △문학 △역사·사회 △철학 △예술·교육 △생태·환경으로 분류한 이들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선발한 인문학 서적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인디고 서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독서 활동과 교류가 이뤄지는 곳이다. 인디고 서원엔 △책을 읽은 뒤 직접 저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인 ‘주제와 변주’ △책을 선정해 함께 읽고 토론하는 일반인 독서모임인 ‘수요독서회’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학부모 모임인 ‘열두 달 작은 강의’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의 줄임말로 지식채널-e를 보며 토론을 하는 ‘정세청세’ △인디고 유스 북페어 △청소년들이 만드는 인문교양지 <INDIGO+ing> 발행 △청년들의 저녁식사 등 다양한 모임이 있다.

기자가 인디고 서원을 찾았을 때는 ‘청년들의 저녁식사’가 열리고 있었다. ‘청년들의 저녁식사’는 책을 읽고 책과 관련한 영화를 보며 토론을 하는 장으로 이날 이들은 서원에 오기 전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함께 봤다. 토론의 주제는 영화와 책에 한정된 것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는 깨달음이나 경험, 평소 생각을 함께 공유한다. 이날 모임에 참가한 유록(경성대 디자인학과01)씨는 “평소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대화의 주제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며 “이 모임을 통해 다른 사람의 세계관을 느끼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져 생각의 폭이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며 행사에 참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올해 수능을 친 이다정(김해외고·19세) 양은 ‘주제와 변주’에 참가하고 있다. 2010년 북페어 프로젝트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인디고 서원 활동이 공부에 방해가 될 것이라며 만류하는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이 양은 인디고에서의 활동을 통해 삶의 방향과 목적,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또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타인의 얼굴>을 읽고 토론한 것을 꼽았다. 이 양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타인이 내가 아닌 사람이 아니라 소통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를 둘러싼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지섭(성균관대 경영학과04)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현재까지 약 8년째 인디고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번 북페어 활동에도 참가했다. ‘왜 인문학을 하느냐’는 질문에 고등학교 시절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이름의 수업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날 수업은  책을 읽고 인상 깊었던 구절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 문장을 읽으면서 한 아이가 울었다. 그 아이가 울자 주변 아이들도 함께 울었다. 한 씨는 “순간 감동을 느꼈고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 씨는 “인문학은 어렵고 따분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며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는 현재 인문학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정의했다.

‘모든 사람이 인문학을 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 같냐’는 질문에 이 양은 “인문학은 분명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인문학을 통해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졌고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꿈에 대한 확신과 인문학이 있기에 이들의 하루는 오늘도 행복하다.

얼마 전 부산의 대학가 앞 대형 서점 2곳이 문을 닫았다. 인디고 서원도 재정난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김미현 실장은 “동네의 작은 서점을 직접 찾았을 때 느끼는 감성이 청소년기의 아이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 생각해 보라”며 잊혀져가는 작은 가치들의 중요성 대해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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