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한국 뇌연구'의 해입니다" 한국뇌연구원이 설립되고 한국뇌연구협의회가 출범하는 등 국내에서 뇌과학 분야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2학기엔 본교 대학원에도 뇌공학과가 신설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본교와 한국뇌학회가 공동주최한 '제1회 뇌과학 캠프'가 지난달 20일(금)부터 21일(토)까지 이틀간 전국 대학생과 고등학생 각 50명을 대상으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뇌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은 각각 △뇌신경과학 △인지뇌과학 △임상적 응용 △신경윤리학 △뇌공학 등을 주제로 열띤 강연을 펼쳤다. 본지는 해당 강연 중 김학진(문과대 심리학과)교수의 인지뇌과학 강연 'Brain, Mind, and Society'를 요약 정리했다.

인지뇌과학(Cognitive Neuroscience)이란
데카르트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있다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송과선에 감각적인 정보와 운동 신호를 연결시켜주는 부분이 있고 이곳에 영혼이 위치해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인지심리학은 뇌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뇌과학은 심리학과의 관련성을 배제하고 기계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두 분야를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1980년대 무렵 두 분야를 함께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지심리학의 주요 개념인 △지각 △기억 △결정 △감정 △주의는 분리해서 연구할 수 없다. 개를 봤을 때를 예로 들면, 시각적 자극이 가해지면 이전에 비슷한 개를 봤던 경험이 떠오른다. 이어 심장박동수가 증가하고 털이 곤두서는 등 감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 뇌는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돼 있어 순식간에 긴밀한 상호작용을 한다.

기억의 재구성과 견고화
흔히 기억이 고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동차 사고와 관련된 영화를 50명의 학생들에게 보여준 뒤 '자동차가 서로 부딪힐 때(hit)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었냐'고 물었고 다른 50명의 학생들에겐 '자동차가 서로 부딪힐 때(smash)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었냐'고 물었다. 통제집단엔 이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 '깨진 유리조각을 봤냐'는 물음에 hit으로 질문했던 집단과 통제집단은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10%에 그친 반면, smash로 질문했던 집단은 30%이상이 그렇다고 답했다. 실제 깨진 유리조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단어가 주는 암시 때문에 그들의 기억이 재구성된 것이다.

또 다른 실험은 조건자극(소리)과 무조건자극(전기충격)을 반복적으로 줬을 때 조건자극만 제시해도 무조건자극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험 집단에 소리를 들려 준 후 기억 형성에 기여하는 단백질의 합성을 억제하는 약을 투여했더니 전기충격에 반응을 보였다. 잠시 후 다시 소리를 들려주자 전기충격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편 통제집단에는 소리 없이 단백질 합성 억제제를 투여했고, 잠시 후 소리를 들려 줬더니 전기충격 반응을 보였다. 즉 조건자극이 제시됐을 때만 단백질 합성 억제제가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것이다. 조건자극을 주면 이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데 그 상태에서 단백질 합성 억제제를 투여하면 그 기억만 사라지게 된다. 어떤 기억을 없애고 싶다면 그 기억을 떠오르게 한 뒤 단백질 억제제를 투여하면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이 '기억 견고화'이며, 사고나 재난 경험 뒤 계속 그 기억이 떠올라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들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없애는 등 그 응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쾌락중추(NAC)와 중독
쥐가 레버를 누를 때마다 전기자극이 뇌의 특정부위로 전달되게끔 장치를 했다. 쥐는 먹이를 줘도 먹지 않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레버를 눌렀다. 이 실험 후 전기자극과 연결됐던 측핵(NAC, Nucleus Accumbens)이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 부분을 자극하면 극도의 쾌락을 느낄 수 있어 쾌락중추라고 부르기도 한다. 뇌신경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도파민은 NAC와 뗄 수 없는 중요한 관계다. NAC에서의 도파민 양을 측정했더니 뇌내 자기자극을 줬을 때 도파민 분비가 증가했다.

도파민 분비는 쾌감을 주는 자극이 나오면 상승하고 금방 적응했다가 다시 줄어든다. 잠시 후 똑같은 자극을 줘도 도파민 뉴런은 활동하지 않는다. 그러다 자극이 없어지고 나면 활동량이 줄어든다. 중독과 관련돼 있는 것이다. 마약중독자들이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마약을 맞더라도 더 이상 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끊게 되면 극심한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갈등 △선택 △감정
사람은 여러 가지 자극에 노출되고 중독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물리칠까? 뇌의 어떤 부위가 충동적인 선택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는지 알아보는 실험이 있다. '△RED △BLUE △YELLOW'라는 세 단어를 제시한다. △RED는 노란색 △BLUE는 빨간색 △YELLOW는 파란색으로 쓰여 있다. 실험자는 글자의 색깔을 이야기해야 하지만 실제 글자의 철자와 원래 과제가 충돌한다. 글자가 주는 정보는 YELLOW이지만 그 글자의 색깔은 파란색이기 때문에 반응시간이 갑자기 길어진다. 두 신호가 갈등하는 이 실험에서 뇌의 전두대상회(ACC, Anterior Cingulate Cortex)가 반응했다. 갈등을 감지해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감정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뇌와 감정은 떼려야 뗄 수 없고 감정은 몸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감정이 없이는 사고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철도공사장에서의 사고로 막대가 뇌를 뚫고 지나가 전두엽의 상당부분을 잃은 한 사람은 사고 직후 의식이 멀쩡했으며 농담도 했다. 병원에서 수술한 뒤 테스트를 했지만 손상된 기능 또한 전혀 없었다. 당시 뇌가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며 뇌는 필요 없는 부분이라는 주장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퇴원 후 이 사람의 성격은 완전히 바뀌어서 계속 욕을 하는 등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전두엽이 망가져 생긴 일이었지만 당시 과학은 그 증거를 댈 수 없었다.

뇌와 감정이입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자신이 먹이를 잡을 때와 다른 원숭이가 먹이를 잡는 것을 볼 때 동일한 뇌세포(거울뉴런)가 반응했다. 다른 사람의 행동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나의 행동과 관련된 네트워크를 다시 이용하는 것이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받는 통증에 대한 정서적인 교감을 알아보는 실험도 있다. 여자는 MRI 안에, 남자는 바로 옆에 앉히고 두 사람의 손가락에 전기자극을 주는 장치를 설치했다. 한번은 여자에게, 또 한번은 남자에게 전기자극을 준 뒤 여자를 기준으로 자신이 전기자극을 받을 때와 상대가 전기자극을 받을 때의 뇌 반응을 측정했다. 1차 체감각영역과 2차 체감각영역은 자신이 전기자극을 받을 때만 반응했다. 그러나 뇌섬엽 등의 부분은 자신과 상대가 비슷하게 반응했다. 실험자(여성)와 상대방의 정서적 교감 정도를 설문지로 측정해 그것과 뇌 반응의 관계를 살폈더니 사랑하는 정도가 컸던 사람은 실험에서 반응이 크게 나타났다.

뇌와 경제학(Neuroeconomics)
경제학자들은 금전적 상호작용에서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관심을 갖지만, 사람들의 행동은 굉장히 정서적이며 이성적인 모델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매우 적다. 경제학자들은 이에 의문을 품으며 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최후통첩 게임이 있다. 실험자가 A에게 돈을 주고 A는 그 돈을 나눠서 B에게 준다. 5:5로 나눠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B는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데, 이때 받아들이면 A와 B가 서로 나눠가질 수 있고 거부하면 둘 다 가질 수 없다. 즉 아무것도 못 받기보다는 9:1로 받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B집단의 대부분은 9:1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공정성이라는 감정적인 측면이 의사결정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뇌섬엽은 9:1로 받았을 때 가장 높은 반응을 보였고 5:5로 받았을 때는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정서적 정보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데 뇌섬엽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때 반응한 부분이 바로 배외측전전두피질(DLPFC,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이다. 이 부분의 기능을 정지시켜 실험했더니 수용률이 증가했다. 실험자와 정상인 모두 제안의 불공정성은 인지하고 있었음을 고려할 때, 결국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직접 의사결정까지 연결되기 위해선 DLPFC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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