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김구’ ‘광복’ 등은 국민 모두에게 당위성을 인정받아 과거부터 현재까지 활발히 기념돼 온 역사적 사건 또는 인물이다. 이들이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에게나 친숙한 역사로서 관심받고 있는 동안 50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조차 없던 역사적 사건도 많다.

김영삼 정권 이후 민주화운동, 민간인 학살사건 등 과거 음지에 가려있던 사건들이 공식적인 역사 속으로 들어왔다. 지난 2000년엔 제주4·3특별법이 제정·공포돼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시작됐고, 2002년엔 ‘망월묘역’이 국립묘지로 승격돼 ‘국립5·18민주묘지’가 됐다. 그러나 해당 전문가들은 아직 이들 역사에 대한 양지화가 모두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4·3연구소 박찬식 소장은 “4·3에 대해 말 한마디만 해도 억압했던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 부분 개선됐지만 아직 죽음의 원인까지는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과거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했던 이들의 역사은폐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희생자들에게 피해사실을 입증하라는 ‘당사자 입증주의’는 한계를 갖기 때문이다. 정호기(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교수는 “기득권의 박탈과 정치쟁점화 등을 우려해 과거사를 지난일로 치부하려는 태도는 갈등과 반목이라는 화약고를 계속 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는 더 많은 희생과 피해를 유발하게 될 것”이라 강조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관(官)보다는 민(民)의 참여가 활발한 기념시설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기념 또는 기억화 사업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과거 이데올로기 정립의 도구로 기념사업을 사용했던 국가 주도 방법론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과거 가해자의 위치였기에 기념사업을 불편해 할 수밖에 없는 관보다는 민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이를 통한 역사의 양지화가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례로 지난 1999년에 완성된 부산민주공원의 부지 선정 단계에선 민간단체인 부마항쟁기념사업회가 용두산 공원을 최적의 장소로 선정했다. 시위와 집회 장소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상징성을 갖고 도심과의 접근성도 좋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부산시는 이 요청을 거부했고 결국 부산민주공원은 기존에 있던 중앙공원의 일부에 세워졌다. 또한 국립4·19민주묘지의 경우 추모광장과 묘지가 구분돼있어 의미가 축소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묘지와 광장이 구분돼 있지 않고 추모비도 묘지의 중간 중간에 세워져 있는 부산의 UN기념공원과는 대조적이다. 양금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념사업팀 과장은 “4·19혁명의 가해자였던 정부가 당시 시설 조성의 주체역할을 했기에 생긴 구성”이라며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해 나와는 멀리 떨어진 사안으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은 결국 기억이 축소되고 잊혀지길 바라는 것”이라 지적했다.

구성 및 기획의 치밀성이 부족해 효과적인 기념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3·15의거기념관은 다른 민주화운동 기념관과 비교해 파노라마의 축소격인 디오라마(Diorama) 전시기법이나 만화를 활용한 전시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는 당시 상황을 극적으로 재현하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기념관 곳곳에서 재생되는 영상물이 오히려 관람객의 시선을 분산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전시물과 관람객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부가설명도 없다. 최호근(문과대 사학과)교수는 “우리나라 기념시설은 토목건축 측면에만 관심을 갖는 등 치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념시설의 연구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꾸준히 제기됐다. 4·3항쟁의 연구는 제주도에 국한돼 있고, 기념사업에 종사하는 이들 중 전문연구인력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정호기 교수는 “기념과 기억 사업은 인문사회적 연구와 토론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충분한 합의를 통해 적절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면 이것이 이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절대 다수의 주체들은 이에 관한 충분한 교육을 받지도 연구를 하지도 않은 채 주장을 앞세우고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와 희생자의 갈등관계가 얽혀 있는 역사사건들이 양지화되고 있는 과정에서 현 세대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양금식 과장은 “묻어두길 원하는 과거의 역사에 대해 우리 세대가 은폐를 시도했듯이 후세들도 부끄러운 과거를 갖게 되면 같은 대응을 할 것”이라며 “정치적 힘에 의해 과거사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끊임없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진실을 지켜내기 위한 정부와 민간단체 그리고 학계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호근 교수는 “억압됐던 기억의 복원을 통해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폭력으로부터 개인의 권리가 희생되는 것을 경계함으로써 평화와 인권을 회복하는 것이 기념사업의 목적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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