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역사기념시설은 전쟁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전쟁마다 수많은 희생자가 존재했고 이들을 기억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이중 지난 1993년 개관한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이하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기획방식과 교육과의 연계 측면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힌다. 개관 계획 당시 ‘왜 홀로코스트와 관계없는 미국 땅에 기념관을 짓느냐’는 비판이 있었으나 ‘나치의 박해를 방관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와 함께 유대인을 받아준 나라로서 기념시설을 갖추기에 무리가 없다’는 의견이 공론화돼 기념관이 건축됐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깔끔한 실내 장식 대신 철근이 드러난 인테리어와 감옥 같은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당시 유대인의 고통에 관람객이 ‘감성의 공명’을 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관람객의 모든 동선과 시선을 계산해 전시물을 설치했으며, 입장 시 희생된 유대인 신분증을 나눠줘 ‘희생자의 인격화’도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념시설이 대부분 해당 주제와는 상관없는 건축양식과 일률적인 인테리어로 구성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교육과의 구체적 연계도 주목할 만하다. 모든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 외에도 교사 연수를 비롯해 일선학교에서 교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전체 인력 400여 명 중 연구전문 인력이 200여 명에 달하고 기념사업에 대한 중요성과 영향력을 인식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결과다. 이곳은 평균 3시간의 관람시간과 전체 관람객의 80% 이상이 비유대인이라는 점에서 성공한 기념시설로서 공증되고 있다.

독일에 있는 ‘학살된 유럽 유대인들을 위한 추모비(이하 홀로코스트 상기기념물)’도 성공적인 기념시설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가해자로서 영원히 사건에 대해 기억하며 반성해야 한다’는 출판인 레아 로쉬(Lea Rosh)의 역설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념물 설치 모금을 걷기 시작했고, 이에 자극을 받은 정부가 합류해 전액 독일 연방정부의 예산으로 조성됐다. 홀로코스트 상기기념물은 활발한 민간참여뿐만 아니라 독특한 설계로도 유명하다. 누워있는 2711개의 회색 사각 시멘트 기둥은 예루살렘이나 프라하에 있는 유대인 묘지의 석관을 연상케 한다. 각 기둥의 위쪽이 0.5도에서 2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 사이를 걷는 관람객들이 불안감을 느끼게 했으며 간격을 성인 두 명이 통과하지 못하게 0.95m로 한정했다. 관람객이 기둥 사이를 혼자 통과하게 해 불편을 느낌과 동시에 희생자들을 애도할 수 있는 공간적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학살이 행해진 장소가 아닌 독일 도심 한 복판에 위치해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최호근(문과대 사학과)교수는 “살아있는 기념을 위해서라면 경우에 따라 현장성보다 접근성을 강조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반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안에 있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은 책임을 회피하며 기념대상을 선별·배제해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의 공격이 뜻밖이었다는 식의 설명과 함께 스스로를 원폭피해자로 부각시켜 당시 일본이 수행했던 침략국가 행위에 대한 책임을 축소시키고 있다. 양금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념사업팀 과장은 “역사는 공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사적으로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기억과 기념은 그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담당할 수 없다”며 “이것이 기념이 일국적 차원에서 끝나면 안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기억의 인식방향에서 민(民)과 군(軍)의 논리가 일치하지 않아 각축을 벌이고 있는 기념시설도 있다. 오키나와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이 대표적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오키나와를 전쟁을 수행한 민족의 성지로 기념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그들이 강요당한 희생에 초점을 맞춘 기념을 원한다. 또한 일본의 패배가 확실시됐을 때 주민들에게 집단 자결을 강요한 일본군의 만행 역시 은폐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시관 안에는 오히려 일본군이 주민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시물이 버젓이 존재한다. 또한 당시 쓰였던 무기와 탄약이나 군사령관의 대형 사진을 전시해 놓은 것은 희생자 중심의 기념과 맞지 않아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해외기념시설이 ‘전쟁’과 관련되다 보니 공통적인 특성과 시사점도 갖는다. 대립과 희생의 역사이니 만큼 희생자에 대한 위로와 청산 모두가 타당한 근거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 양금식 과장은 “전쟁기념물의 경우 가해자와 희생자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기억하고자하는 의도와 망각하고자 하는 의도가 동시에 강하게 작용한다”며 “인식 방향에 따라 기념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을 자각하고 편향된 기념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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