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외환위기를 겪은 후 한국사회는 어떻게 변해왔고, 그 속에서 경제체계의 근간인 자본주의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한국사회학회(회장=김문조 교수·문과대 사회학과)가 '한국 자본주의를 되돌아본다(Rethinking Korean Capitalism)'라는 주제로 지난 20일(금) 본교 인촌기념관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선 특히 IMF이후의 사회적 불평등 문제가 다각도로 조명됐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가족관계 변동이 초래한 불평등 구조 변화
신광영(중앙대 사회학과)교수는 '현대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 변화: 한국의 민주화, 세계화와 불평등'을 주제로 발제했다. 신 교수는 지난 1987년 이후 민주화의 이행이 불평등의 완화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 효과가 불평등을 급격히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의 권리 확대가 임금 인상과 전사회적인 수준의 분배구조 개선을 가져왔지만,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노동시장 유연화'와 대외적 요구 및 관료주의에 영향을 받은 복지정책이 분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다시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와 함께 '노령화로 대변되는 인구구조 변화'와 '이혼으로 대변되는 가족관계의 변화'가 한국의 불평등 심화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과정에서 장년층 노동력 인구의 해고가 대량으로 이뤄지고 이들이 노인인구로 진입하면서 노인빈곤층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인 단독가구 중 빈곤층 비율은 1998년 80.6%에서 2002년 91.5%로 늘어난 반면, 노인이 없는 가구의 경우 1998년 21.3%에서 2002년 19.3%로 오히려 감소했다.

이혼가구의 증가 또한 불평등 심화의 한 요인으로 설명된다. 이혼으로 인한 소득 하락뿐만 아니라 이혼 여성이 취업하는 업종도 사회 구조상 대부분 서비스 분야의 비정규직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인구 고령화와 가족구조의 변화는 이전의 한국 사회에선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낳고 있다"며 "복지정책이 가족정책 등 다른 정책들과 연계되고, 무엇보다 노동시장 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지 않으면 불평등 심화 추세를 되돌리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와 모성이 만들어낸 패러독스

조은(동국대 사회학과)교수는 '젠더 불평등 또는 젠더 패러독스 : 한국 자본주의와 모성의 정치경제학'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조 교수는 계급 양극화와 모성이 만나는 접점에 주목해 젠더 불평등을 바라봤다. 그는 "아버지의 기(氣)를 살려 주려던 IMF당시와는 달리 최근 경제위기에서 유독 어머니가 호명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와 유교가부장제가 결합한 유교자본주의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교수는 출산율 저하는 '이성적 모성'의 위기이며 이는 곧 중산층 재생산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성적 모성'이란 중산층을 중심으로 생리적·자연적 모성을 극도로 자제하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의 결과물이다. 이성적 모성은 고학력 여성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혼인 지연과 초산연령의 상승을 이끌며, 이는 결국 저출산 문제를 야기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일하는 여성의 출산장려보다는 여성들의 다산을 권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할 경우, 중산층의 보수화를 촉진함과 동시에 이성적 모성을 압박해 결국 출산의 양극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그는 전망했다.

또한 조 교수는 오랫동안 가족구성의 원리였던 부계혈통주의가 2000년대 들어와서 아들을 가진 어머니의 처지를 비관하도록 만들고, '다문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결혼이주여성 가족'이 다수 등장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아들을 경멸시하는 요즘의 추세를 표현한 여러 이야기를 예로 들며 "패러디를 통해 아들의 소용없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동안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의 중심에 있던 '아들의 어머니'의 위기상황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들이 더 이상 돌봄의 책임과 감정의 의지가 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며 아들선호라는 구조적 젠더 문제를 푸념수준으로 격하하는 '사회적 위기의 개인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반면 결혼이주여성 가족의 대거 등장은 개인적으로 겪게 되는 재생산의 위기가 사회적 위기로 확장되는 한국사회의 또 다른 패러독스로 해석됐다. 남아선호로 인해 성비왜곡이 심각해져 외국에서 신부를 들여오는데, 이 성비왜곡의 피해를 세계 자본주의 체계가 만들어낸 도시 저소득층, 농촌 등 한국사회의 취약계층 남성이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모성에 부과된 젠더 패러독스를 어떻게 풀 것인가는 한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라며 "이는 결국 모성의 도구화와 모성에 부과된 돌봄을 어떻게 분리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대적 빈곤 깊어진 주거격차사회 진입

장세훈(동아대 사회학과)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주거빈곤 문제'를 주제로 발제했다. 한국 사회의 주택수급체제는 외환위기 이전까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절대적 주거빈곤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경제질서가 신자유주의로 방향을 틀자 중산층이 위축되고, 분양가 자율화로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는 등 기존 체제가 무너지면서 주거빈곤층이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크게 느끼는 '주거격차사회(housing divide society)'에 진입했다고 장 교수는 지적한다. 외환위기 이후 절대적 주거빈곤층의 규모가 줄어들고 물리적·경제적 측면에서도 주거빈곤이 일정 부분 완화됐지만, 사회적·심리적 측면에서의 주거빈곤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주거빈곤은 갖가지 주거복지 대책을 단순히 나열하는 미봉책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으며, 주거빈곤의 재생산을 초래하는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견제하고 제어하기 위한 공공부문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시장 재 사회세력 간의 불균등한 역학관계를 해소하는 것과 함께 시장 바깥의 소외세력(주거빈곤층)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밖에도 △정이환(서울산업대 기초교육학부) △주은우(중앙대 사회학과) △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정일준(문과대 사회학과)교수 등이 참여해 한국자본주의가 노동시장, 문화변동 등 사회 각 영역에서 어떻게 드러났는가에 대해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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