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선수촌에 들어서자 막 훈련을 끝낸 국가대표 선수 몇 명이 의무실로 향한다. 의무실은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선수들과 10여 명의 물리치료사들은 서로 친한 인사말을 건네고는 익숙한 듯 마사지, 전기치료, 스트레칭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24년째 물리치료사로 일해온 김미현(47) 씨를 만났다.

김 씨는 본교 병설보건대학 물리치료학과 82학번으로, 고대병원에서 인턴생활 중 지인의 권유로 태릉선수촌 스포츠 물리치료사에 지원했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선수촌을 첫 직장이자 평생직장으로 삼게됐다. 그가 입사하고 곧 치러진 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으로 국내에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고, 더불어 물리치료가 스포츠분야에서 전문적인 치료행위로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 “물리치료는 통증을 관리하여 선수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부상한 선수는 복귀를 최대한 빨리 도와주는 치료입니다. 통증을 관리하기위해 열과 전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매뉴얼(손) 테라피와 각종 마사지, 테이핑, 그리고 운동능력측정과 운동치료 프로그램까지 포괄하는 것이 스포츠물리치료예요”

김미현 씨는 물리치료 베테랑인 지금도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다. 효율적인 장비나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주말을 이용해 학회, 강연 등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월급에서 상당부분이 교육비로 나가고, 딸아이에게 엄마로서 주말을 함께 보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는 이런 공부가 자극이 된다고 말한다. “물리치료법은 이전의 것들이 수정되기도 하고 새로운 테크닉이 나오기도 하죠.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선수들의 경기력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공부는 자기만족이기도 해요. 똑똑한 후배들이 많아지는데 질 순 없죠”

그가 치렀던 올림픽만 해도 벌써 여섯 번이다. 아시안게임이나 그 외 세계선수권대회까지 합하면 선수단 본부임원(의무진)으로 갔던 것이 수십 여 번에 이른다. 현장에 나가면 휴일도, 퇴근시간도, 개인시간도 없이 선수들과 함께해야 한다.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 20여 일간 물리치료사 6명이 300여명의 선수들을 돌봤다. “경기 중, 전후, 새벽 언제든 요구가 있으면 선수들을 처치해줘요. 24시간이 긴장의 연속이죠”

20년이 넘는 선수촌생활에서 선수들과 나눈 정과 유대 또한 남다르다. 하루의 힘든 훈련을 끝내고 물리치료실을 찾는 선수들에겐 이 시간이 김 씨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되곤 한다.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한 선수들과는 가족사, 연애사, 고민거리 등을 훤히 아는 친구이기도하다. “이곳에 있던 어린선수가 세월이 지나 코치나 감독이 되고, 그가 가르친 선수가 선수촌에 다시 들어오기도 해요. 항상 이곳을 지키고 있으니 생각날 때 전화해주는 선수들도 있죠. 선수촌이 맺어준 감사한 인연들이 많아요” 그녀는 문득 한 체조선수와의 이야기를 꺼낸다.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며칠 앞두고 이단평행봉에서 떨어져 사지마비로 1급 장애인이 된 김소영 선수. 어린 나이에 비운의 체조선수가 됐지만 미국 유학중에도, 귀국해서도 김 씨와 자주 연락하고 만난다. 선수시절은 짧았지만 김소영 선수가 겪었던 역경들을 서로 나누는 과정에서 누구보다 친한 사이가 됐다.

선수들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점이 왜 없을까. “아파서 며칠만 쉬면 곧 회복될 것 같은데 그동안 훈련을 하지 않으면 운동력과 감각이 떨어지니까 쉴 수 없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리고 선수들이 올림픽과 세계적인 경기를 위해 수 년간의 인고의 준비기간을 잘 아는 그녀로서는 연습이나 예선 중 부상을 당해 본 경기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도 안타깝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때 여자 100미터 단거리 한국 신기록보유자이고 금메달을 목표로 하던 유망한 선수가 있었다. 그런데 결승을 3일 앞둔 예선경기 중 허벅지 뒷근육이 늘어나는 부상을 입었다. “도저히 회복할 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하루에 몇 번씩 치료하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어요. 그러나 결승 스타트에서 결국 선수는 아파서 출발하지 못했어요. 이런 상황은 선수에게도 가슴에 사무칠 일이고 나로서도 한계를 체감을 하게 돼 많이 아쉽죠”

한편, 김 씨에겐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얼굴이 빨개지는 실수담이 하나 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공을 다투던 한 선수가 팔꿈치가 탈골돼 반대로 꺾인 상태가 됐다. “의무진은 어떤 사고에도 동요하면 안되는데 갑자기 머리속이 하얘졌어요. 평소와 달리 ‘어떡해’하며 우두망찰하고 있었죠. 팔꿈치가 빠졌을 땐 신경이나 힘줄이 상하지 않도록 잘 끼워넣어야 하는데 이미 놀래버렸기에 다른 처치를 하기보다는 서둘러 병원으로 보냈죠. 현장에 있던 외국인들에게 ‘한국 의무진은 실력이 없다’는 눈길을 받는 것 같아 속상했어요” 그때의 일은 큰 경험이 됐고 후배들에게도 타산지석으로 삼으라고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녀는 태릉선수촌을 ‘청춘이 녹아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가장 열정적이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선수들과, 동료들과, 그리고 남편과 함께했던 곳이다. 그의 남편도 이곳에서 물리치료사로 재직 중이다. “내가 세월 따라 나이를 먹어도 이곳의 선수들은 항상 풋풋하죠. 선수들을 보면서 내 청춘과 열정을 간접적으로 느껴요”

태릉선수촌 물리치료사 일을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김미현 씨는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고 말한다. “선수 한명이 좋은 성적을 내려면 선수의 노력뿐만 아니라 감독의 지도, 스포츠심리, 영양, 웨이트트레이닝, 과학적인 분석, 의료 등등이 조화돼야 경기력 향상으로 나타나요. 내 노력이 선수들의 성과로 나타나 국민들의 기쁨에 일조할 때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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