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혹은 노예 제도라고 하면 무엇부터 떠오르시는지? 채찍을 맞아가며 미국 남부 목화 농장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출신 노예? 로마 제국의 전함 밑바닥에서 사슬에 묶인 채 노를 젖는 노예? UN 인신 매매 근절을 위한 글로벌 계획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는 케빈 베일스의 <일회용 사람들>(이소출판사)을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디지털 시대라는 오늘날에도 새로운 형태의 노예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노예가 소유노예 혹은 신분제에 바탕을 둔 노예라면, 오늘날의 노예는 자산노예, 채무노예, 계약노예다. 이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채무노예는 돈을 빌리기 위해 몸을 잡히는 경우다. 노동을 통해 최초의 빚을 갚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계약노예는 겉으로는 합법적인 노동계약을 맺고 있지만 폭력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이주의 자유도 제한 받고,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이 책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 2700만 명의 노예가 있으며, 노예 수가 많은 국가는 인도(1800만~2200만), 파키스탄(250만~350만), 브라질(30만~50만), 중국(25~50만), 네팔과 모리타니( 25만~30만)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1만~1만 5천명이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현대판 노예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같은 이른바 선진국에도 드물지 않다. 선진국의 노예들 대부분 가난한 나라에서 밀입국한 사람들이다. 예컨대 말리 출신의 소녀 가장 세바는 프랑스 파리의 한 가정으로 팔려갔다. 매일 밤 구타당하는 소리를 들은 이웃들의 신고로 자유를 되찾은 20대 초반의 세바는 불과 5세 수준의 지능에 머물고 있었다. 시간 개념을 이해 못했고, 자기 나이조차 몰랐다. 세바 같은 가정부 노예가 파리에만 3천명이라고 한다.

그래도 노예라는 게 과연 오늘날 있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런던 경제대학(LSE) 교수 울리히 백의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생각의 나무)를 읽어 볼 일이다.  저자는 유럽인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유럽 노동자 2명 가운데 1명만이 지속성 있는 전일제 직장을 갖게 될 것이며, 나머지는 불안정한 취업 조건 아래서 ‘노동유목민’으로 생존하게 된다고 내다본다. 이른바 청년 실업, 임시직 근로자 문제가 크게 부각돼 있는 우리 현실을 돌이켜 보게 만든다.

문제는 노동 위기가 일시적인 경제 위기의 산물이 아니라 경제발전의 필연적 결과라는 점이다. 노동비용을 낮출수록 이윤이 높아지는 자본주의의 구조가 노동의 투입비율을 낮추는 기술의 진보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기는 이미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울리히 백은 취업노동과 성격이 다른 시민노동과 이를 바탕으로 한 탈국가적인 시민사회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시민노동은 희생을 요구하는 시민참여가 아니라 생태·환경 등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하고 대가를 받는 것이다.
 
울리히 백이 말하는 노동 유목민과 케빈 베일스가 말하는 일회용 사람들은 같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다만 노동 유목민이 주로 첨단 과학기술시대의 선진국이 안고 있는 고민이라면, 일회용 사람들은 주로 인구가 많은 저개발국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선진국과 저개발국을 막론하고 고실업, 저임금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추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울리히 백과 케빈 베일스 모두 유럽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답한다. 결국 답은 우리 자신이 찾을 수밖에 없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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