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이 정적 속에서 하얀 빛으로 아주 느리게 진공상태처럼 바닥으로 떨어진다.
무대 중앙에서 물에 젖은 심청이 무대 깊숙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도착할 무렵 무대 중앙 위에서 꽃잎이 떨어져 내린다.

-창극 <청> 대본 中 1막 마지막 장면

(사진=박지선 기자)
1막이 끝날 무렵,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 홀연히 나타나 관객석을 바라보자 해오름 극장의 1500석을 가득 메운 관객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다. 아마도 인간 ‘청’의 삶에 대한 미련, 고뇌가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리라. 판소리 ‘심청가’를 재구성한 창극 <청>을 통해 벌써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울음과 웃음, 미련, 고뇌, 행복을 함께했다. 고사 직전의 우리 민속극이 일으킨 ‘조용한 반란’의 중심에는 작품의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변화를 주도한 유영대(인문대 국어국문학과·국립창극단 예술감독)교수가 있다.

유 교수는 인터뷰 내내 ‘우리시대의 창극’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많은 문화적 양식들이 새로운 시대의 가치에 발맞춰 그 형식과 형태를 조금씩 변화시켜나가듯 창극 또한 도약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관객과 호흡하지 않으면 공연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매번 새롭게 변화하고 도전해야만 꾸준히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어요. 특히 창극은 이런 변화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요. 300년이란 기간 동안 양식화된 가부키와 경극 등의 해외 전통극에 비해 창극은 아직 역사가 100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대극적 요소를 곳곳에 갖추고 있거든요. 새로운 양식을 만들기에도, 자유로운 해석을 하기에도 유리한 것이지요”

이런 시도가 결집된 첫 작품이 바로 <청>이다. ‘효녀’의 모습을 부각시켜온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청>은 ‘인간 청’의 모습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이름 앞에 항상 붙어있던 ‘효녀’라는 수식어도, 아버지 심봉사와의 연결고리인 ‘심’이란 성도 빼고 공연 제목에는 ‘청’이란 한 글자만이 사용됐다. 기존의 대본을 수정했고, 음악과 무대도 모두 이전과는 형식을 달리했다. “먼저 회전 무대를 이용해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바칠 때 타고 가는 배를 표현함과 동시에 ‘청’이라는 인간의 고뇌와 번민을 표현했어요. 극의 긴장감과 속도감 또한 더했고요. 무대 장치도 음악 또한 기존의 창극이 고수해온 수성(창자의 소리에 악기가 즉흥으로 화답하는 방식)을 버리고 지휘자의 연주에 따르도록 하고, 단조롭게 느낄 수 있는 국악 가락을 서양 악기의 접목 등을 통해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어요. 결과 또한 성공적이었어요. 이전까지는 1500명을 수용하는 공연장에서 기껏해야 200명 채우는 것이 고작이었던 창극이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했으니 말이에요”

유 교수는 창극 <청>의 성공에는 고대인의 도움이 밑바탕이 됐다고 말한다. “여러 동료 교수님들께 새로운 시도를 바탕으로 한 창극 공연을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강의 도중에 창극 <청>을 꼭 보러 가라고 학생들에게 홍보해주시는 것은 물론, 공연·예술 분야의 강의를 하는 교수님들은 공연을 보고 후기를 적어오라는 과제를 내주시기도 했어요. 그리고는 과제 때문에 마지못해 온 학생도, 궁금해서 온 학생도 공연을 보고는 주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한 번 극장을 찾았지요. 고대인의 끈끈한 정이 새로운 예술적 시도의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거예요”

이런 고마움을 담아 오는 9일(토)까지 공연되는 <청>에는 고대생만을 위한 특별한 행사도 마련돼 있다. 공연이 열리는 해오름 극장에 따로 설치된 고대생 전용 판매 부스를 찾으면 3만원 가량의 표를 1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유 교수는 앞으로도 젊은 계층과 창극을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한 공연을 보여줄 것이라 말한다. 이미 <산불>, <로미오와 줄리엣> 등 다양한 작품을 공연해 객석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앞으로 게임, 영화 등을 통해 젊은 학생들이 익숙하게 접해온 삼국지를 바탕으로 한 ‘적벽가’나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오이디푸스 왕, 맥베스 등을 창극화할 생각이에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자신합니다. 고대생 여러분도 발전해 나가는 창극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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