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실용주의 노선을 자처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고, 이어 지난 2월엔 취임 1주년을 맞아 “창조적 실용주의 국정철학을 바탕으로 선진일류국가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국가 전반의 개혁을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정부 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실용주의는 하나의 화두다. 지난 4.29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은 분배에, 민주당은 성장에 관심을 보이며 실용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실용주의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평중(한신대 철학과)교수는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란 저서에서 실용에 대해 ‘공허한 이념의 수사학에 대한 환멸이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한 원인으로 작동했다’며 ‘△민주화 △역사청산 △통일 등의 표어는 낡은 거대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교육문제 △집․땅값 △취업․실업 등의 미시담론이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러시아와 중국에서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바 있다. 러시아에서 실용주의는 푸틴정권 등장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푸틴이 집권할 당시 러시아는 국가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푸틴 정권은 딱히 전면에 내세울 이데올로기가 없는 상황에서 실용주의를 택했고, 이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이에 러시아 국민들은 오늘날까지 실용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중국의 실용주의 노선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에 잘 드러난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등소평의 실용주의 정책은 중국경제가 30년간 연 8퍼센트 이상 고도성장하는데 기여했다. 다만 그 성장 이면에 깔린 빈부격차나 부정부패 등의 문제에 집중하며 실용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용주의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박명규(서울대 사회학과)교수는 “현 정권의 실용주의는 기존의 이념적․정파적 고정관념을 넘어 인식의 유연성을 제공하며, 실사구시적 현실파악을 통해 급변하는 국내외 상황에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데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실용주의가 ‘이념’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제시되면서 ‘원칙 없는 편의주의’ 혹은 ‘실리주의’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는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단기적 성과에 치중한 기회주의적 실용주의였다”며 “△경쟁주의 교육정책 △단계적 대운하사업 △줄다리기 대북정책 등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비판과 함께 실용주의 노선에 대한 보완책도 제시되고 있다. 박명규 교수는 “정부는 정책이 실용적이란 이유로 무조건 고수해선 안된다”며 “실용주의를 담보할 정도의 △정책구상 능력 △종합적 판단능력 △유연한 대처능력을 기르고 국민과 소통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실용주의는 정부의 행동 규범에 불과한데 여론의 지지나 비판이 실용주의 자체에만 집중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성환(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교수는 “실용주의가 대단한 이념 체계인 양 인식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실용주의가 옳고 나쁘냐가 아니라 실용주의 노선으로 추구하는 비전이나 가치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은 “실용주의는 그 이상의 가치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편의주의로 전락한다”며 “이명박 정부는 보수의 가치로 실용주의를 뒷받침해야 하며 보수의 가치란 곧 시장주의”라고 말했다.

반면 현재호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복지주의’를 역설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의 복지 수준은 다른 OECD 가입국들에 비해 여전히 취약한 편이다”며 “국민이 CEO출신 대통령을 택한 것은 자신들의 삶을 보듬어달란 뜻인 만큼 정부는 대다수 국민의 복지를 위한 실용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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