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서서히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대중에 알리는 사람이 있다. 상대 개그맨을 향해 궤변과 독설을 거침없이 늘어놓는 개그맨 박영진. 여의도 공원에서 만난 그는 TV속 박영진의 모습과는 다르게 수줍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개그맨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나 박영진에게 개그맨이 된 동기는 ‘밥을 먹게 된 동기’와 똑같은 것 같아요. 운명적이었다고 할까.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을 웃기는 게 좋았고, 코미디언이 뭔지도 모르면서 ‘저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개그맨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감정으로 느끼는 두려움보다는 머릿속에서 생기는 두려움이 많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가볍게 보지는 않을까, 한심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어렸을 때는 앞에서 웃기는 박영진이 아니라 뒤에서 웃기는 박영진이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웃어주는 것에 행복을 느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어요.

개그맨 생활에서 본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는 것이겠지만 이보다 더 큰 의미는 일단 제가 행복해지는 것이에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내가 개그를 했을 때 웃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생각보다는 웃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행복해지는 것에 의미를 두는 거죠.

요새 시사풍자 개그를 하고 있는데, 그 출발점은 어디인가요?
사실은 개그콘서트에서 하고 있는 ‘뿌레땅 뿌르국’이 시사풍자를 해보려고 만든 코너가 아니었고, 처음부터 제가 들어간 코너도 아니었어요. 다른 멤버들이 만든 코너에서 캐릭터에 맞는 사람을 찾다가 제가 뽑혀서 들어가게 됐어요. 그러니까 거의 다 된 밥에 숟가락 하나 들고 참여하게 된 거죠. 처음 모여서 디테일하게 구성할 때도 시사풍자적인 내용은 거의 없었어요. 무인도인 줄 알았던 곳에 대통령이 있고, 문화부장관이 있고, 복지부 장관이 있는데, 단 세 사람이 여러 가지로 바뀌는 게 포인트였어요. ‘난 대통령이자 디자이너이자 미용사이자…’라는 식으로 점점 바꾸면서 웃음을 주는 콘셉트였어요. 그런데 수정을 통하고 제작진과 얘기를 해서 점점 바뀐 것이 어느새 시사풍자를 하는 코너가 됐더라고요. 그렇다보니 지금은 하나씩 메시지를 주려고 하고 있죠.

요즘 인기는 실감하고 있나요?
한 번도 인기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TV에서 매주 방영되면서 얼굴이 나오니까 사람들이 알아봐주시는 거죠. 물론 예전보다 많이 알아봐주시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느껴요. 그렇다고 해서 ‘나 인기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이 뭔가 하나 얻었다싶으면 어깨가 올라가거든요. 최대한 그걸 누르기 위해서 혼자 주문을 거는 거죠. ‘나는 아직 멀었어’라고.

‘개그맨 박영진’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개그맨은 굉장히 오락적인 직업이잖아요. 사실 저는 개그맨으로서 장점은 부족해요. 사람들에게 항상 엔돌핀이 생기도록 해야 하는 직업인데, 저는 그런 능력이 별로 없어요. △개인기 △춤 △노래 △재치 등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방송국에 들어와서 알았어요. 저는 개그맨이 되려고 했을 때 ‘사람들에게 웃음만 주면 땡이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방송국을 들어오고 나서 그런 생각이 무너졌어요.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계속 도전하는데 잘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그 때 ‘난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박성광을 잘 이용했구나’라고 생각했죠(웃음). 그 외의 장점은 많이 가지고 있어요. 착하고, 후배를 잘 챙겨주고. 그런데 이런 모습은 TV로 잘 안 비춰지는 모습이잖아요. 개그맨으로서 장점은 개그를 잘 짜는 것 정도에요. 그런데 이것도 제가 잘나서 잘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웃어주니까 잘되는 거죠. 사람들이 얼마나 웃어주느냐에 따라 내가 웃긴 사람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나는 거죠. 그래서 웃어주시는 분들에게 늘 고마워요.

그렇다면 단점은 무엇인가요?
집중을 잘 못하고 산만해요. 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박대박’이라는 코너 하나만 했을 때는 한우물만 팠어요. 이걸로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웃음을 줄 수 있을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집중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방송생활을 하다 보니 여러 방면으로 나가게 되더라고요. △봉숭아학당 △뿌레땅 뿌르국 △다른 코미디 프로그램 △케이블 프로그램 △행사 등 여러 가지를 일주일 안에 다 해야 해요. 이걸 잘 조율하지 못하는 게 단점이에요. 요새는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내가 벌써 여기서 지치면 안 되는데’ 하고. ‘봉숭아학당’ 회의를 하면 ‘뿌레땅 뿌르국’ 걱정이 되고, ‘뿌레땅 뿌르국’ 회의를 하면 ‘봉숭아학당’ 걱정이 되고. 그러다보니 두 가지다 눈에 안 들어오죠. 그래서 제가 공부를 잘 못했어요. 국어시간에 수학 생각하고, 수학시간에 점심 생각하고. (웃음)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지금은 팀원끼리 체계적으로 회의를 해요. 예전에는 일상생활에서 재밌는 일이 있으면 기억해뒀다가 코미디에 녹였죠. 성광이랑은 그렇게 많이 했었어요. 평소에 대화하다가, 상황극을 만들어요. 그렇게 말을 주고받다가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게 좋은데 요새는 그렇게 하면 일주일이 너무 빠듯해요. 그래서 회의시간을 정해놓고 해야 해요. 그렇다보니 마감시간에 쫓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그게 많이 아쉬워요.

유행어 ‘그건~ 네 생각이고~’는 처음에 어디서 어떻게 생각한 건가요?
그건 사실 제가 만든게 아니고, 제작진에서 ‘그건 네 생각이고’라는 말을 가지고 개그를 짤 수 있겠느냐고 주문을 했어요. 그래서 그 말을 끌어내기 위해 전후에 나올 말들을 생각하게 됐죠. 사실 지금 그 말을 유행시킨 봉숭아학당 ‘은사님 캐릭터’는 성광이가 하려고 했던 캐릭터에요. 그런데 제작진 회의에서 떨어지고, 제가 하게 된 거죠.

개그맨 박성광 씨랑 친한데,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껄끄럽지 않나요?
아무래도 불편하고 미안한 부분이 있죠.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것도 하나의 시험 같은 것이거든요. 똑같은 시험지를 줬는데, 누구는 100점을 맞고 누구는 80점을 맞을 수 있는 거죠. 성적이랑 비슷한 거예요. 처음에는 굉장히 미안했어요. 친구가 잘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내가 뺏어온 것 같이 느껴졌어요. ‘괜히 한다고 했나’라고 생각했었는데, 3주 정도 지나고 반응이 좋아지면서 그런 생각을 싹 씻었어요(웃음). ‘이건 내가 한거야’라고. 성광이도 많이 도와주고, ‘네가 하니까 더 재밌다’라고 말해주니까 힘이 돼요.

TV에서 비춰지는 모습과 실제 모습은 어떻게 다른가요?
똑같기도 하고, 극과 극이기도 해요. 일단 TV에서는 너무 늙게 나오니까 외모가 많이 다르고요(웃음). 캐릭터적인 면에서 보면 비슷한 것도 있어요. 제가 약간 염세적이거든요. 세상의 긍정적인 백가지를 안보고 세상의 안 좋은 한 가지만 봐요. 그리고 ‘어휴 뭐 이런 세상이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괜히 구박하고, 잘 흘러가고 있는 세상을 괜히 우겨서 틀어보려고 하는 건 비슷해요. 고집도 세고요. 다른 점은 친구들 단점 가지고 많이 놀리지 않아요.

그렇다면 진짜로 개그맨 허경환 씨가 재미없어서 재미없다고 하는건 아닌가요?
요새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요. 사실 제가 개인적으로 봤을 때 경환이는 재밌는 친구에요. 그냥 웃긴 친구 있잖아요. 그런데 ‘봉숭아학당’에서 한 주 정도의 소재거리로 ‘허경환은 봉숭아학당에서 하는 게 뭐가 있어?’라고 말한 건데, 사람들이 웃기 시작하면서 계속하게 된 거죠. 반응이 좋아서 제작진이 몇 주 더 해보라고 한 게 벌써 6개월째에요. 왕비호도 한번에 3사람씩 욕하는데, 한사람을 6개월 동안 욕하고 있단 말이죠. 이제 더 이상 욕할 것도 없어요. 처음에는 ‘허경환은 나와서 하는 것도 없는데, 정말 웃긴 걸까?’라는 어느 정도의 리얼리티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억지스럽게 짜고 치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허경환 웃긴데 왜 그러냐’라고 욕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물론 이해는 하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물론 웃는 사람들도 많지만,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웃겨야 하나?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개그맨이 됐지 욕먹으려고 개그맨이 된 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죠. 이런 문제로 경환이하고 상담도 많이 했어요.

앞으로 어떤 개그맨이 되고 싶으세요?
저는 ‘욕먹지 않는 개그맨’이 되고 싶어요. 이 세상에 100%는 없지만 모든 사람들을 다 웃겨보는 게 소원이고 최고의 목표에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 한사람이라도 날 욕하면 실패한 개그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게시판을 일부러 확인하지는 않지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100명 중 1명이라도 웃지 않는다면, 나머지 99명도 재밌어서 웃는 게 아니라 몇 명이 웃으니까 따라 웃는 거죠. 웃지 않고 욕하는 한 사람이 소신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을 웃기지 못한다면 개그맨이 아니죠. 욕먹지 않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게 제 바람입니다. 욕하지 마십시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