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부터 우리 사회와 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스포츠의 불균형성’을 꼽아왔다. 단정하여 말하건대, 일반 학생들은 (레저가 아닌 교육적 차원에서) 스포츠를 전혀 가까이 할 수 없으며 장래에 운동을 직업으로 선택하게 될 학생들은(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의미에서) 교실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는 현실! 나는 우리 사회와 교육의 수많은 문제가 바로 이 극단적인 사례 안에 농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운동할 수 있는 권리나 교육받을 권리 같은 고전의 명제는 둘째치더라도, 인간의 내면적 감성과 지적 능력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충족시켜주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어느 한쪽에서는 완전히 절멸이 되는 현상은 이 사회의 극단적인 이분법과 효율만능주의와 승리지상주의 그리고 ‘머리’를 쓰는 사람과 ‘몸’을 쓰는 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심각하게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좀 더 오늘의 주제와 연관하여 말한다면, 오늘날 대학 스포츠의 위기 역시 바로 이 스포츠와 교육의 심각한 불균형성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을 검토해 보건대, 오늘날 대학 스포츠는 우리 사회의 치열한 경쟁 구도를 단적으로 반영하듯이 격렬한 쟁투의 현장이 되고 있다. 스포츠이니만치 ‘격렬한 몸싸움’이나 ‘치열한 경쟁 의식’이 발현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실제적인 경기 안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법칙성이라면 모를까, 그라운드 안팎에서 선수, 감독, 학부모, 대학 관계자 그리고 프로구단 등이 뒤엉켜 좀처럼 실타래를 풀 수 없는 가혹한 이해 득실의 ‘번외경기’를 펼치고 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물리적 폭력’이나 ‘금품 수수’는, 그것이 비록 일부에 국한된 일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오랜 독버섯이 되어 마침내 그러한 비극이 벌어져도 그것을 어느 ‘운 없는’ 선수의 우연한 불행으로 여길 뿐, 대학 스포츠 전체의 구조로 확산하여 성찰하는 진지한 눈빛은 매우 드물다. 이 같은 비극이 결코 어느 ‘몰지각한’ 사람의 그릇된 행태만이 아닌 것은 이 나라 대학 스포츠의 현황이 과도한 스카우트 경쟁, 주전 선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프로 진출 같은 일련의 흐름 속에서 빚어진다는 점에서 ‘빙산의 일각’이라는 진부한 표현은 놀랍게도 상당한 현실성을 갖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요즘 들어 스포츠 현장의 뜨거운 목소리와 합리적 대안을 범정부 차원에서(문화체육관광부, 교육과학기술부, 대한체육회 등) 일부 수용하여 ‘공부하는 학생 스포츠’를 정립하기 위해 법적 장치까지 마련하기로 나선 가뭄 끝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저열하고 낙후한 스포츠 교육 현장의 실태와 요구가 ‘제도 개선’의 뒷받침을 얻게 되면 우리 사회의 교육과 스포츠 문화는 훨씬 더 활기찬 분위기로 바뀔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 스포츠’! 이 화두는 일부의 회의적인 시선이나 온정적인 지지 정도를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이 화두만 제대로 진행된다면 우리 사회의 교육과 스포츠는 그 지형과 풍경과 생태와 조건이 거대하게 변하게 된다. 운동 선수에게 정상적인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것은 인권의 차원에서나 교육의 차원에서 너무나 당연한 요구인 것이지만, 그 파급력은 ‘스포츠 선수도 공부해야 한다’는 단순한 온정적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효과는 대학을 졸업하긴 했어도 마땅히 삶의 진로를 찾을 수가 없는 대다수 학생 스포츠 선수들의 미래를 개선하는 것이다. 몇몇 선수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프로로 진출하거나 개인종목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여 은퇴 이후의 삶에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만 대학 시절에 선수로 활동하면서 정상적인 학업에 참여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 당한(본인이 수업을 거부해서가 아니라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구조이다) 스포츠 선수들은 현역 생활을 마친 이후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최소한의 정상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좀처럼 확보할 수가 없
다. 선수 개인의 정신적 갈등은 물론 가족 관계의 해체까지도 더러 발생한다. 정상 수업을 들으면서 대학 선수 생활을 한다는 것은 선수들의 열악한 생존 조건을 문제 삼는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국민스포츠’ 대접을 받고 있는 야구만 해도 지난 해 대학 야구선수들의 프로구단 취업률은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70%가 넘는 학생선수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야구 백수’가 되고 만다.

지나가는 김에 언급하자면, 정상적인 수업 병행이 이뤄지기 이전이라 해도, 대학 차원에서 ‘졸업 선수 사회화 교육 프로그램’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일부 뛰어난 선수들은 프로로 진출하여 현역 생활을 마친 후 나름대로 진로를 찾거나 ‘엘리트 선수 은퇴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외 연수와 지도자 생활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그러한 대열에 끼지 못한 수많은 무명의 대학 졸업 선수들이다. 해마다 수많은 종목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교를 명예를 위해’ 4년을 뛴 후, 아무런 방책도 없이 사회로 나가게 된다. 이를 체육 관련 기구와 대학 스포츠 담당자들이 협심하여 일정한 ‘사회화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진행하는 것이다. 뜻있는 대학이 협력하고 관련 기구의 인프라와 네트워크가 지원된다면, 정상적인 수업 문화가 정착되기 이전에 졸업하게 되는 수많은 학생 선수들에게 작은 전환점이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이다.

축구와 농구를 시작으로 하여 ‘U리그’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도 새로운 흐름에 부응하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동안의 대학 스포츠 대회는 대체로 어느 한 도시에 모여 집중적으로 토너먼트를 벌이는 기이한 방식이었다. 그런 대회를 위하여 필요 이상의 과도한 합숙 훈련이 진행되고 당연히 대회 기간 동안에는 개최 지역 부근의 허름한 모텔에서 며칠씩 머무르게 된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대학 생활을 완전히 박탈당한 채 얻은 ‘승전보’가 과연 ‘모교의 명예’를 드높힌 일이 되는지 심각하게 반문하는 과정에서 ‘U리그’는 시작된 것이다. 다양한 종목에 걸쳐 ‘U리그’가 실시된다면, 우선 소속 선수들이 일반 학생들과 함께 ‘대학생’으로서 평범한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다. 대회를 치르기 위해 지방 소도시 모텔에서 합숙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대학 내에서 수업과 훈련, 그리고 대회가 치러지는 것이다. 수업을 듣거나 학내의 일상 문화에 참여하는 일도 많아질 것이다.

또한 이 ‘U리그’는 학생 선수들에게 과도한 승부욕이 아닌 기술 수련과 학업 참여 그리고 이에 따른 선수의 순조로운 사회 적응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단기간에 모여 승부를 내는 방식은 기술 수련이나 개인 잠재력, 창의력 같은 말 대신 오로지 ‘불타는 투지’만을 자극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선수가 나중에 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사실 가르칠 만한 게 별로 없게 되는, 그리하여 무리하게 승부 근성을 촉구하다가 더러 물리력을 동원하는 그 오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U리그’를 전면적으로 확대해야 할 까닭
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관중 없이 쓸쓸하게 전개되던 양상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대학 캠퍼스 내의 운동 시설을 ‘U 리그’의 구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해당 학교 학생들은 적어도 축구, 농구, 배구 같은 전통적인 구기 종목에 있어서 훨씬 더 많은 관람 기회를 갖게 된다. 제 아무리 열성적인 팬이라 해도 저 멀리 떨어진 소도시까지 내려가서 자기 팀을 응원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학기 도중에 강원도 속초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고려대 축구부의 8강전이나 전북 익산에서 열리는 고려대 농구부의 4강전을 ‘원정 응원’하러 가
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U리그’의 확산으로 바로 학교의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이런 대회가 일상적으로 열린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캠퍼스 안에서 ‘홈 앤드 어웨이’대회가 열린다면 재학생과 동문 그리고 이웃 주민까지 참여하는 새로운 스포츠 문화도 생성될 것이다. 시설 상태가 양호한 일부 대학에서는 이런 리그 전을 상시적으로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으로 중계 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많은 홍보 예산을 상당 부분 줄이면서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실험과 제도 개선은 결국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불균형성, 그러니까 일반 학생들은 체육 수업을 전혀 받지 않아도 되고 학생 선수들은 평범한 대학 생활을 조금도 누릴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이 낡은 문화를 바꾸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일반 학생들은 엄밀한 과학성과 고도의 규칙성과 비범한 감각을 요구하는 스포츠의 미학에 빠져들 것이고 학생 선수들은 ‘모교의 명예’를 위해 젊은 생애를 저당 잡혀야 했던 과거와 달리 정상 수업을 통하여 진정한 대학의 일원이 되고 나아가 스포츠를 통하여 형성된 자질과 감성으로 얼마든지 사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상성’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그 핵심이 바로 ‘공부하는 학생 선수 상 정립’이다. 이 제도의 현실화에 우리 사회의 교육과 스포츠, 그 미래가 달려 있다.

정윤수
오마이뉴스 문화스포츠 담당 편집위원
스포츠 평론가
저서 ‘축구장을 보호하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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