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시련

김혁은 초등학교 3학년 처음으로 스틱을 잡았다. 인천의 연성초등학교 다니던 그는 수업시간 중에 아이스하키 선생님이 들어와 선수로 발탁되었다. 또래보다 덩치가 크고 운동신경 좋은 그를 선수로 뽑았던 것. 김혁은 "처음에는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또 아이스하키 선수라고 하면 무언가 있어 보였다"며 어린나이에 스틱을 잡게 된 계기를 회상했다. 그렇게 시작한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김혁은 "구기 종목 중에 가장 빠르고 격렬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고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그에게 첫 시련이 찾아왔다. 연성중학교로 진학한 그는 3학년 때 큰 부상을 당하고 만다. 지금은 같은 팀 동료가 된 임지민(체교 06, LD)의 늦은 슬라이딩에 발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한 것. "그냥 아프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큰 부상이라 오랫동안 빙판으로 못 돌아오는 것이 아쉬운 건 뒤에 일이었죠."

피나는 노력으로 힘든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김혁은 아이스하키의 명가 경복고로 진학한다. 그리고 뛰어난 재능을 보인 고등학교 2학년, 당시 우리학교 최원석 감독이 그에게 고려대학교 진학 권유했다. "고려대학교가 더 멋있어 보였다"는 그는 우리학교 입학을 약속했다. 김혁이 3학년 때 문화관광부장관배 아이스하키대회에서 경복고를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최우수선수를 차지하자 연세대학교가 입학 제안을 해왔다. 김혁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남자가 한 번했던 약속은 지켜야죠!"

고연전을 위하여
우리학교에 입학한 김혁은 1학년 때 고연전을 못 뛸 뻔했다. 고연전이 열리기 2달 전 훈련 도중 선배의 바디체킹에 무릎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것. "정기전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던 과정에서 당한 부상이라 눈물이 날 만큼 아쉬웠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재활에만 모든 것을 쏟았다." 재활을 위해 집과 병원만 오갔다는 그는 놀라운 회복속도와 정신력으로 그해 정기전에 출전할 수 있었다. 비록 팀은 2-3으로 아쉽게 패배했지만 큰 부상을 딛고 출전한 의미 있는 첫 정기전이었다. 새내기 치고는 실수 없이 잘 치렀다며 자신의 플레이를 평가한 김혁은 다음해 맞대결(정기전은 취소되었음)에서는 결승골을 뽑아내며 4-3 승리를 이끌었다. 3학년 또 다시 찾아온 부상은 김혁을 찾아왔다. 그래도 고연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을 때 부상을 당해 여유롭게 재활했다며 1학년 때보다는 편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시즌을 마치고 올해 초, 똑같은 연골이 찢어져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4번째 부상이고 수술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꿋꿋하게 부상을 떨쳐내고 다시 돌아와 와세다대와의 교류전에서 2골을 뽑아내며 재기를 알렸다. 마지막으로 올해 목표를 묻자 "당연히 정기전 승리입니다. 지금 10년 동안 못 이기고 있는데 졸업 전에 꼭 이기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올해 아이스하키부 역사상 최초로 투표를 통해서 주장을 뽑았다. 주장 후보는 4학년 선수 모두. 김혁은 다른 동기들을 제치고 2009년 아이스하키부 주장으로 선출되었다. 후배 선수들은 김혁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캡틴'이란 지위에 어울린다 생각했다. 네 번의 부상을 딛고 일어선 김혁의 오뚜기 정신이 팀 전체에 스며든다면 정기전 11년 무승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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