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에서 송추로
학우들이 야구부 선수들에게 야구를 배우고 함께 어울리는 자리, 이름하여 ‘어울림’. 아이스링크 앞으로 참가자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든다. 다들 모르는 사람들이라 어색하지만 한, 두 마디씩 대화를 나누며 얼굴을 익힌다. 이름과 학과, 학번을 쓴 이름표를 배부하고 10시 50분에 송추로 출발! 예정 시간에서 20분 지연됐지만, 고대타임 이 정도면 양호하다. 잠시, 우리학교 야구부의 숙소와 훈련장소인 송추 야구장으로 가는 교통편을 소개한다. 1호선 의정부역에서 23번 버스! 환승 할인도 된다. 야구부 학생들은 학우들의 깜짝 방문을 반길 것이다. 오늘은 특별히 야구부 버스기사님께서 아이스링크까지 오셔서 참가자와 기자들을 송추까지 데리고 와주셨다.

첫 만남
약 40분 걸려 도착한 우리에게 코치님께서 근처 식당을 가리키며, 점심을 예약해 놓았으니 다들 식사하고 오라고 하신다. 송추 야구부 식당의 맛있는 밥을 못 먹는 건 좀 아쉽지만, 세심한 배려에 참 감사했다. 식사가 끝난 후 학생들이 유니폼으로 갈아 입을 동안 야구부 선수들의 이름표를 만들기로 했다. 박철홍(체교 88) 코치님이 나에게 몇 학년이냐 물으신다. 3학년이라고 하자, 같은 3학년 친구를 불러주겠다 하시며
“남석아! 여기 와서 애들 이름 불러줘”하신다. 김남석(체교 07, 3B) 선수라면, 내가 지난 호에… 음음(저는 김남석 선수가 본 모습으로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기사였습니다!). 06학번부터 이름과 포지션을
불러주는 김남석 선수. 이름표를 모두 배부한 뒤 나도 이만수 코치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으로 달려간다.

공포의 몸 풀기
박 코치님의 안내에 따라 1시부터 준비체조로 훈련을 시작했다. 처음에 워밍업으로 하는 체조는 선배들로부터 내려온 것인데 조금씩 변형이 가미된 체조라고 한다. 선수 1명의 기합에 따라 경기장을 가볍게
세 바퀴 뛴 뒤에 본격적인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앞에 나와서 시범을 보이는 선수는 08학번 이철우. 평소에도 본인이 한단다. 상체 스트레칭 후 하체 스트레칭이 계속 된다. 뻣뻣한 학우들을 보며 “다 노인대학에
서 왔어?!”하는 박 코치님. 취재를 핑계로 참여를 하지 않았지만 눈으로 보기에도 고난도의 스트레칭이다. 걸어가면서 허벅지를 자극하는 러닝 스트레칭 동작을 끝으로 준비 체조를 마쳤다. 기자들을 제외하면 유일한 여자 참가자인 서해민(언론 07) 학우는 “스트레칭이 민망하지만 재미있다”며 “따라갈 수 있는 데
까지 따라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언론학부 야구소모임 뉴비스의 매니저인 서해민 학우는 “정경대 동아리 퍼블릭스 매니저가 온다고 해서 왔는데 정작 그 학우는 안 왔다”고 했다.

선수와 함께 한 캐치볼
1시 40분부터 선수와 학우가 한 명씩 짝을 지어 캐치볼 연습에 들어갔다. 가장자리의 두 사람이 눈에 띈다. 중앙동아리 백구회의 김우석(컴퓨터공학 04) 학우와 야구부 김민(체교 08, 포수) 선수. 김우석 학우는 ‘투수인가?’ 싶을 정도로 어깨가 좋아 보였지만, 동아리에서 포지션은 김민 선수와 같은 포수라고 했다.

그는 “동아리에서 할 때와는 공의 스피드나 세기 면에서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캐치볼 하는 학우들을 보니 슬며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코치님께 부탁해서 글러브를 하나 빌렸다. 김민아 기자와 함께 ‘정해정 기자-이천웅(체교 07, P) 선수’ 조에 가서 저희도 끼워달라고 하며 들어갔다. 캐치볼은 물론이고 글러브조차 처음 껴 보는 나는, 공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공을 놓칠 때마다 이천웅 선수가 친절
히 알려 준다. “몸이 앞으로 나오면 안 되고요. 공은 어차피 몸 쪽으로 날아오니까 기다려서 받으세요. 이번엔 높게 던질게요.” 위로 날아오는 공은 확실히 더 받기가 쉬웠다. 이제 야구 보면서 못 하는 선수보고 뭐라고 안 해야지. 야구선수는 참… 대단해.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양승호 감독님
캐치볼을 끝내고 투수조, 타격조로 나누어 30분 씩 훈련한 뒤 수비 연습을 하기로 했다. 잠시 기자들과 함께 양승호 감독님께 인사드리러 갔다. 언제나 푸근한 미소의 감독님. 야구부 선수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 아닐까 싶다. 감독님은 “내가 감독이고 애들이랑 많이 어울리려고 하지만, 그래도 애들은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어. 얘네 마음을 아는 것 같아도 다는 몰라”라고 하시며 이후에도 학우들과 선수들의 관계가 지속되면 오늘 하루가 더욱 의미 있을 거라고 하셨다.

앞으로 대학 야구의 전망에 대해, 예전처럼 프로팀에서 거액을 준다고 해도 “남자는 대학을 나와야 한다”며 대학으로 오던 시대는 지났다며, 지금 대학 선수들, 특히 야수들은 같은 기량의 고교 선수들에게 밀리는 현실이라고 했다. 프로팀에서 원하는 선수는 시속 140km/h를 못 던져도 제구가 되는 투수, 타율은 낮아도 발이 빠르고 수비가 확실한 야수라고 하면서 특히 야수는, 방망이는 3할이면 훌륭하다고 하지만 수비는 9할 9푼 9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준호(체교 06, 외야수) 선수가 타율은 낮아도 발이 빠르고 좋은 어깨를 가진 선수라고 평했다. 최고시속 148km/h를 기록하는 임진우, 대학 최고의 사이드암 신정락 등 투수에 대해서도, 시속은 150대까지 끌어올릴수 있기에 제일 중요한 건 제구력임을 거듭 말했다.

그 때, 평상복을 입은 세 선수가 감독님께 인사드리러 온다. “재활조 애들이야.” 손목이 좋지 않은 이명진 선수와 성요한, 김진영 선수다. “고등학교 때 3, 4번 쳤던 애들인데…. 난 나중에 고질병이 되지 않도록 1, 2학년 때 수술을 하게 해. 그래야 회복하고 프로 가서도 잘 할 수 있지”라며 진정으로 선수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감독님이다.

나름 치열했던 ‘큰 산’vs’두더지’

어느 새 수비 연습을 끝내고 연습 경기(7이닝)를 치를 시간이다. 원래 선수들도 함께 경기를 하려고 했으나, 학우들이 다칠 것을 우려하여 학우들만으로 팀을 구성했다. 선수들은 본인이 가르쳤던 학우를 코치하는 역할을 한다. 이준호, 이도윤 선수가 각 팀의 감독을 맡았다.

팀 이름을 지을 것을 제안했다. 박 코치님이 “‘고대, 안암골’로 해.” 하자 이준호 감독이 식상하다며 불평한다. 코치님이 “그럼 ‘연대, 독수리’로 할래?”하자 웃음이 터진다. “‘두더지, 큰 산’으로 하죠.” 하고 이
준호 감독이 제안하자 이어지는 박 코치님의 대답, “너희 오늘만 야구하냐?” 알고 보니 ‘두더지’는 박철홍 코치님의 별명, ‘큰산’은 길홍규 코치님의 별명이란다. 두더지 코치님께서 여기자들도 모두 참가하라고
하셔서 여학우 4명은 각각 1~4회, 5~7회로 나누어 타석에 서기로 했다.

 ‘큰 산’ 팀의 1회초 공격은 1~3번 타자가 각각 도루 견제사, 삼진, 삼진으로 물러나서 별 성과 없이 끝났다. ‘두더지’팀의 1회말. 2번 타자가 안타로 출루한 뒤 3루까지 도루하여 순식간에 1사 3루. 3번 타자가
삼진으로 물러난 뒤 4번 타자가 볼넷으로 출루, 다음 타자 적시타에 힘입어 1:0이 되었다.

‘큰 산’이 2회초에 동점을 만들었으나 바로 2회말에 1점 앞서 나가는 ‘두더지’팀.

3회말, ‘두더지’팀이 2점을 더 내며 4:1로 앞서나간다.

4회 초, 무사 만루 상황에 타석에 선 윤택한(경제 02) 투수. 3-유 사이를 가르는 시원한 안타로 2타점을 올려 자신의 1, 2회 때의 자책점을 고스란히 되갚는다. 무사 1, 3루 상황, 타석에는 고봉준 기자. 볼넷을 고르며 다시 만루 상황이 되고 후속 타자 김민규 편집장의 몸에 맞은 볼로 밀어내기 1점을 추가하여 4:4 동점을 만든다. 김원 전 편집장의 폭풍과 같은 헛스윙 삼진으로 1사 만루, 김명선 기자가 초구를 타격한 것
이 좌중간을 가르는 안타가 되며 3루에 있던 윤택한, 홈으로 들어온다. 역전 후 다음 타자 역시 몸에 맞은 볼로 출루한 뒤 이어진 안타로 총 6점을 득점하는 ‘큰 산’팀. 7:4로 승부는 이미 결정난 것 같았다.

5회가 다가오자 긴장된 나는, 급히 배트를 하나 구해서 휘둘러보다 최근 타격감이 좋은 오정환(체교 06, DH) 선수에게 코치를 부탁한다. “오른손잡이면 이렇게 서시구요. 정해진 방법은 없으니까 먼저 본인
스타일로 스윙해 보세요.” 오정환 선수가 던져주는 공이 의외로 배트에 잘 맞는다. 세게 던져달라고 주문한 공을 쳤는데 하필이면 그 공이 김남석 선수 발에 맞는다. 아, 가뜩이나 미안한데…….

내 차례가 되어 타석에 서자 갑자기 긴장이 된다. 공은 빨리 날아오고 급한 마음에 헛스윙, 결국 4구 삼진이 된다. 3구 삼진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타석에서 물러나자 “만수야, 왜 이렇게 못
쳐”하는 ‘두더지’ 코치님의 목소리.

김기형 체육위원장의 깜짝 방문에 기자단과 함께 인사드리고 왔더니 전세는 역전되어 9:7로 두더지 팀이 앞서고 있었다. 코치님께서 여학우 4명이 다 삼진당해 출루 못했으니 대주자로 서라고 하셔서 제일 먼
저 정해정 기자, 안타를 친 퍼블릭스 소속 최우혁 학우를 대신하여 1루에 선다. 그런데 2루 도루에 이어 3루까지 훔친 뒤 후속 타자 안타로 득점한다. 10:7로 벌어진 스코어. 상황을 정리하자면, 아까 ‘큰 산’ 팀의
타자로 섰던 선수가 상대편의 대주자로 서서 홈까지 들어온 것. ‘큰 산’ 팀이 별 소득없이 이닝을 종료하면서 경기는 ‘두더지’팀의 승리로 끝났다.

‘두더지’팀의 1, 3루를 맡은 이종학(지구환경 04), 박종휘(재료공학 03) 학우는 백구회에서 오랫동안 호흡
을 맞춘 선수들답게 깔끔한 수비를 자랑했다. 시합이 끝난 후, 김기형 위원장은 학우들에게 “야구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이런 기회를 가지면 좋겠네요. 정기전 때도 많은 관심 바랍니다”라며 인사하고 격려했다.

표지촬영과 뒤풀이
단체 사진을 촬영한 후, 이번 호 표지 사진을 어울림 캠프를 주제로 찍기로 한다. 주인공은 팀의 에이스 신정락(체교 06, P) 선수와 학우들이다. 출중한 실력답지 않게 수줍음 많은 신정락. 프로팀에 가서도 훌륭
한 선수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 순서인 뒤풀이가 기다리고 있다. 평소 선수들의 식단을 책임지는 분들과 야구부 학부모님들이 수고해 주셨다. 정성껏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선수들과 학우들이 어울
려 삼겹살과 밥을 먹었다. 과일을 가지고 자리로 왔더니 “저기 마침 오네” 하며 웃는 다른 기자들. 헉, 김남석 선수다.

“제 타율을 정확하게 쓰셔서 좀 당황했어요”하는 김남석 선수. “아, 제가 오늘 쳐보니까 1할도 치기 힘든 것 같더라구요”라고 대답했는데, 말하고 보니 실수한 것 같다. 내 의도는 야구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했으니 부진에 대해 직접적으로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는데…… 으음. “아까도 제 발에 공을 맞추더라구요(웃음).” 그래도 밝고 성격도 좋은 선수라 다행이다. 다음에 잘 하시면 저희가 특집호 만들어 드릴게요!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
뒤풀이가 끝나고 다시 그라운드에 모였다. 김민규 편집장의 인사로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

“오늘 즐거우셨나요? 야구부 선수들은 선배 학우들한테 밥 사달라고 연락하시면 맛있는 밥 사드릴 겁니다(웃음). 다들 수고하셨고 다음에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참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준비가 미흡한 점이 있었고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모두 야구를 사랑하는 고대인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여진 하루였다.

‘세상에는 별처럼 무수한 야구팀들이 원칙과 룰을 지키며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 반짝임 속에서 결국 자신의 별을 발견하고, 응원하게 된다. 즉 저 별은 나의 별이다.’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중에서

학우들의 마음속에 응원할 별이 하나 더해졌다면, 선수들에게 대학 시절의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