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한상우 기자)

녹슨 철문 위로 선글라스를 쓴 물고기가 헤엄친다. 이 철문부터 △마임 △무용 △미술 △사진 △영상 △거리극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인 문래동 창작촌이 시작된다. 지난 19일(일), 이틀에 걸쳐 공간의 재해석이 이뤄지고 있는 문래동 창작촌에 다녀왔다.

“오늘 오전에도 구리시에서 젊은이가 다녀갔어. 요새 카메라 든 젊은이들이 종종 찾아와” 35년째 문래동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 ‘신흥상회’ 박광자 씨가 기웃거리는 기자를 보며 말했다. “재개발이 되면서 사람들이 다 떠나고 지하랑 위층이 다 비어있었어. 삭막했지. 근데 2, 3년 전부터 예술가들이 차츰차츰 들어오더니 빈 공간들을 다 채우데. 대학생들도 놀러와서 여기저기 그림을 그려. 화장실 가는 길에 개 그림을 그려놔서 깜짝 놀랐다니까. 몇 달 전엔 춤도 추고 연극도 하고, 마치 잔치하는 것 같았어”

문래동 철재상가는 1960년대 철강단지의 메카로 불리던 곳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중국산 저가제품 유입과 도심재개발사업 등으로 위축되면서 많은 이들이 떠나갔다. 이 비어있는 공간이 2, 3년 전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새로운 성격의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1층엔 철강소가, 2, 3층엔 예술작업장이 공존하기 시작한 것이다.

3층으로 내려가니 김이준수 씨의 커피숍 ‘세번째 첫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본래 가게 이름이 아닌 ‘골목길 다락방’이라 불리는 이 커피숍은 문래동 예술가들의 사랑방이다. 창작촌 공동체 내에 △예술인 △인문사회과학자 △사회활동가 등 다양한 전문인들이 연구실로 사용하는 Lab39의 공간을 함께 쓰고 있다. 이 공간에 그의 커피숍이 지난달부터 더부살이 하고 있다. 여기선 각종 토론회와 워크숍이 열린다. 최근엔 ‘문래동 사용하기’란 워크숍을 진행 중이다. 김이준수 씨는 “여기 창작촌 사람들은 노후한 건물이나 철공소의 쇳소리를 소음으로 여기지 않아요. 오히려 이 공간의 한계를 이용해 영감을 얻고 궁리하면서 예술의 다양한 형태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예술의 접목으로 불러온 철재상가의 긍정적 변화는 환영하지만, 이로 인해 갑자기 쏟아진 외부의 관심에 우려하는 이도 있다. 공용공방에서 작업 중인 디자이너 공동체 ‘노네임노샵’의 김건태 씨는 최근 창작촌이 외부의 관심을 받으며 생기는 문제에 민감해하며, 예술촌은 자생적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시의 문화도시정책이 창작촌의 자생적 특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기관에선 문화를 도시발전과 경쟁력 창출이란 목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요. 예술가들이 각각 자기 의지가 있는데 그것과는 무관하게 돌아가다 보니 서로 엇갈리게 맞물리는 거예요. 원래 문래동 창작촌은 예술가들이 자생적으로 공동체를 만든 공간인 만큼 지원이 필요하다면 외부의 지원책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지원제안서를 제출하는 방향이 옳은 것 같아요”

또한 그는 예술공간과 별개로 철재상가만의 축적된 자연스러운 문화적 가치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래동 창작촌의 모습이 일부 언론에 비쳐질 때 마치 예술가들의 벽화가 낙후된 공간을 예술로 덮어버리는 것처럼 얘기하더군요. 그건 문래동을 위협하는 재개발의 논리와 같은 맥락입니다. 버려진 공간을 덮는 게 아니에요.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재창조하는 거죠”

김건태 씨와 함께 ‘재활용 가게 etc’를 운영하는 이소주 일러스트레이터는 문래동 창작촌 공간 자체를 재활용으로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재개발한다고 하면 이전에 살던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 그러나 여기에 모인 예술가들은 비어있는 공간 자체를 예술촌으로 재활용 하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자는 계기로 재활용가게도 만들었어요” 다음날 찾아간 이소주 씨의 집 안엔 녹슨 철제 간판 ‘광동철강’이 있다. 문 앞이 꽉 찼다. 건너편 상가의 간판이 교체될 때 달라 했다고 한다. 그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간판 스타일이라며 문래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칸막이 장식으로 쓰고 있다. 그는 남들이 버린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가치부여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 다시금 소중하게 쓰는 일에 주목하고 있다. 7월 셋째 주부터 주변지역 아파트에서 재활용 미술 공부방을 시작할 예정이란다. “버려지는 괜찮은 박스들을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며 재밌게 노는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재활용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는 거에요”

이소주 씨가 키우는 고양이 다섯 마리가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아래는 여전히 철강상가 직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위로는 고층 아파트가 문래동을 내려본다. 그 사이에 예술가들이 스며든 새로운 공간이 숨어 있다. 도심의 빈 공간을 찾아내 예술적 환경을 형성하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곳, 여기는 문래동 창작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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