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와 같은 서간체 소설을 즐겨 읽는 나에게 독일 장편 소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용면에선 여느 연애 소설과 마찬가지로 두 남녀가 펼치는 애정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개입을 일절 배제한 채 오로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메일로만 이뤄진 구성 방식에 이 소설만의 독특함이 있다.

이야기는 정기 잡지 구독을 취소하려고 보낸 여주인공 에미의 메일이 언어 심리학자인 레오에게 잘못 발송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을 매개로 두 주인공은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간다. 처음의 호기심은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전이된다. 단 한 번도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지만 메일을 통해 전달되는 그들의 사랑은 그 어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면의 감정보다도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계속 되기엔 주변 사람들이 받을 상처가 너무 컸다. 몇 달 전 사랑했던 애인과 헤어진 레오와는 달리 에미는 한 남자의 아끼는 아내이자, 두 자녀의 엄마였다. 새벽 3시가 되도록 서로를 생각하며 그리워한다 해도 메일 밖 세상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두 사람의 밀회를 알게 된 에미의 남편이 레오에게 에미를 떠나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면서 레오는 마음을 정리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한다. 떠나기 전 두 사람은 1년 후 첫 대면을 가질 것을 약속한다.

1년 후 에미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에미는 레오와의 대면에서 경험하게 될 더 큰 사랑의 감정이 두려웠던 것이리라. 

이 책의 매력은 진한 사랑과 설렘, 그리고 아픔이 메일의 행간 행간마다 잘 녹아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사랑의 이야기가 미완성으로 끝났다는 데 있다. 이러한 미완성으로 인해 두 사람이 떨어져 있는 시간을 걷는 동안 얼마나 서로를 생각할까하고 상상하게 된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 밤, 알싸한 기분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글/ 김종률(문과대 영문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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