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한 두 곳에 불과했던 대안지식공간이 2007년 이후 10곳에 육박할 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대안지식공간은 제도권 교육기관인 대학을 벗어나 △문화 △철학 △생태 같은 주제로 연구와 토론, 강연을 진행하는 지적 담론 공간이다.

제도 밖 국내지식사회에 관한 글을 모은 책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에서 문학평론가 오창은 씨는 대안지식공동체의 존재방식을 △학문·생활공동체 △아카데미 강좌 중심 대안지식공간 △출판사 주도 대안지식공간으로 분류했다.

‘빈 중심’의 자유로운 학문·생활 공동체

학문·생활공동체의 전형적 예는 대안지식공동체 ‘지행네트워크(이하 지행)’다. 학문·생활공동체는 지식을 탐구하며 활발하게 소통함으로써 지식과 삶을 일치시키고자 한다. △오창은 문학평론가 △이명원 문학평론가 △하승우(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가 모여 만든 지행은 지식인과의 인문사회토론 강연인 ‘콜로키움’과 교도소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인문학’,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청년특강’을 진행한다. 하승우 교수는 “지행은 어떤 하나의 이념을 계몽하고 가르치지 않고 여러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여 소통한다”고 말했다. 그는 ‘찾아가는 인문학’의 목적 또한 자연스런 소통에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도 대표적인 학문·생활공동체다. 공간을 △세미나실 △식당 △독서실로 나눠 회원이 함께 공부하고 차를 마시며 유대감을 강화한다.

한편 일부 평론가는 학문·생활공동체가 공동체 특유의 경계망과 지향이념을 갖고 있어 다양한 담론을 다루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 교수는 대학 밖에 존재하는 지식공동체의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비판이라며 반박했다. 그는 “대학 밖에서 활동하려면 유지비용이나 공간마련이 어려워 일정 정도 외부와의 경계를 두긴 하지만 다양성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다”며 “지행은 특정 이념을 내세우지 않는 ‘빈 중심’에서 다양한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다방향 흐름의 생동감 있는 강좌

아카데미 강좌 중심의 대안지식공간으론 △철학아카데미 △풀로엮은집 △참여연대의 아카데미 느티나무가 대표적이다.

내년이면 개원 10주년을 맞는 철학아카데미는 지금까지 약 1000개 강좌를 개설했다. 그동안 수강한 인원만 6000명이 넘는다.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조광제 박사는 “학생이 계속 바뀌는 대학 수업과 달리 철학아카데미엔 반복해서 수강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강좌를 꾸준히 만든다”며 “생동감 있는 강좌로 교수자도 학생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강좌의 다양성은 대학 강좌에도 영향을 끼쳤다. 철학아카데미의 경우 대학원생의 관심이 높은데, 이들이 학교로 돌아가 대학원 전공의 다양성을 불러왔다. 조 박사는 “철학아카데미의 강좌를 수강한 대학원생 중 지도교수에게 수업 들은 강좌를 추천해 새로운 전공을 개척한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자율적 지성활동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지성단체 ‘다중지성의 정원(이하 다지원)’ 운영관계자도 다지원을 비롯한 비제도권 지성단체가 대학의 고정된 커리큘럼을 바꾸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연구 분야와 관련된 특강 시리즈를 진행하는 중앙대의 ‘게르마니아’, 연세대의 ‘서산철학강좌’가 그 예다.

위계질서 없이 공동운영위원 10여명이 강의를 관리하고 네트워크를 이끌어온 다지원은 운영구조부터 참여자의 다양성에 기반을 둔다. 교육 자체도 ‘배우는 자가 가르치고 가르치는 자가 배우는’ 다방향 흐름을 강조한다. 또한 다지원 강좌는 분과학문에 얽매이지 않는다. 대학이 분과를 두고 국문학, 영문학과 같이 과목을 나눠 인문학을 가르친다면 다지원은 학문적인 틀에 개의치 않고 강좌에 필요한 모든 학문을 다룬다. 다지원 관계자는 이러한 구조를 ‘삶에 유익한 지성적 활동을 모두 수용하는, 삶으로서의 인문학’이라 일컬었다.

반면 일부 철학과 교수는 단계별 커리큘럼이 있는 대학 시스템과 비교할 때 대안지식단체 강의론 전문적 지식 습득이 어려울 것이라 지적한다. 다지원 운영관계자는 “인간이 단계를 밟아 성장한다는 입장에서 볼 땐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인간 지성은 다양한 활동이 서로 연결될 때 발전한다”며 “가장 효과적인 지성 발전방식은 다양한 체험과 성찰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의 네트워킹이다”고 반박했다.

학문의 사회적 공유, “출판사가 할 일을 하는 것 뿐”

출판사 주도로 세미나 모임과 인문학 행사를 개최하는 대안지식공간도 있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안중철 편집장은 “후마니타스는 대안지식공간의 수준은 아니지만 인문사회학 도서를 발간하는 출판사로서 학문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며 “충분히 하고 있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이라 말했다. 현재 후마니타스는 홈페이지에 ‘함께 만드는 책’ 공간을 만들어 번역을 공유하거나 역자와 저자가 모여 사상가에 관한 세미나나 번역세미나를 진행한다.

더 풍부하게 삶을 지탱하는 지식공간 만들기

대안지식공간에의 관심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한계가 많다.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상근 연구자도 부족한 실정이다. 문지문화원이나 풀로엮은집은 온라인 강좌를 개설해 회원을 모으고 있고, 철학아카데미도 더 풍부한 강좌를 개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행의 경우 향후 대안지식공동체의 활동 방향으로 지식협동조합을 제안했다. 지식협동조합은 지식과 생활의 경계를 허물고 지식인이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는 기반 만들기를 추구한다. 지행의 하 교수는 “지식인만의 지식이 아니라 생활인의 지식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며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한국 지식인들이 자신의 앎에 뿌리를 달아줄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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