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8호 고대신문 여론면에서 최근 사회를 뜨겁게 달군 ‘루저사태’가 다뤄졌다. 발언의 문제 정도를 떠나서 이번 사태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이 이미 일정 수위를 넘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사과성 멘트로 마무리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루저사태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돼야 할 사항은 지금같이 ‘격렬한 분노’를 야기하는 사회적 요인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간단하게 2가지 요소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논란 발언에 해당하는 대상자가 소수가 아닌 대다수라는 것, 두 번째는 패배자라는 말에 상처받는 이들이 대다수라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두 번째 요인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 정도를 살펴볼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루저’라는 발언은 왜 그토록 많은 이의 분노를 사게 된 것일까?

예를 들어 똑똑한 사람에게 ‘바보’라고 말하는 것은 애칭 정도의 의미를 지닐 뿐 당사자에게 아무런 분노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바보’라고 생각하는 경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이 ‘바보’라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이이게 그 말은 욕설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렇듯 그 발언에 대한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느냐 여부에 따라 상대방의 반응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저’라는 발언이 그토록 많은 이의 분노를 사는 것은, 이 사회를 살아나가고 있는 대부분의 젊은이가 패배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의 수많은 ‘패’함에 지쳐 스스로를 패배자로 여기고 있는 좋지 않은 시점이기에 ‘루저’ 발언이 비수처럼 다가온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 여대생의 망언 차원을 넘어 현재 젊은이들의 자기애 정도를 살펴볼 수 있는 상징적 지표로 자리 잡게 될 듯하다. 다시 말하자면 이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 사회의 패배의식이 그만큼 짙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번 일의 향후 논의 방향은 젊은이가 스스로를 승리자로 여길 수 있는 ‘승리의 장’을 마련해주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불어 승리자와 패배자가 극명하게 갈리는 전쟁 같은 사회가 아닌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함께 어우를 수 있는, ‘루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

이동빈 (공과대 전기전자전파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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