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가 1년 6개월을 버티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죠” KT&G 상상마당에서 발간하는 컬쳐 매거진 <브뤼트>의 김봉석 편집장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 주간지에 ‘한국의 문화잡지는 왜 늘 망하나’란 칼럼을 냈다. 이 칼럼에서 그는 한국의 문화잡지는 특정 장르의 전문지를 제외하고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문화잡지의 수명이 상당히 짧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영화, 만화, 음악 등 다양한 대중문화를 다루던 <이매진>의 폐간을 들었다. <이매진>은 창간한지 몇 달이 되지 않아 복합문화잡지에서 패션이나 미용을 다루는 여성지로 변해갔다.

바뀌어진 정체성, 사라져간 희소성

이유는 광고에 있었다. 판매수익보다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잡지사의 재원구조는 문화잡지의 정체성을 바꿔버린다. 이는 전반적인 출판계 침체와도 관련이 깊다. (사)한국잡지협회 관계자는 “경제위기는 잡지계도 예외는 아니었다”며 “휴간 또는 폐간된 잡지가 늘어나는 것의 가장 큰 이유는 재정문제”라고 말했다. 인지도 높은 한 영화 주간지의 경우 표지 뒷장이 광고로 도배된 경우가 많았다. 김봉석 씨는 “광고주의 기사요구는 편집부의 초기 기획 방향에 변질을 가져온다”며 “광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지면 결국 구독자를 향한 콘텐츠 개발 의지가 약화돼 내용 부실의 결과를 맺게 된다”고 말했다.

문화잡지의 기본적 특성은 집적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단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잡지 기본기능의 일부를 온라인 매체가 대신하면서 잡지가 제공했던 정보의 희소성이 사라져갔다. 월간 <피아노음악> 관계자는 “콩쿠르 일정이나 공연 정보를 잡지를 통해 얻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활용해 정보를 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는 학생 계층의 정기구독 현황이 유동적인 것이 이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김봉석 편집장은 오프라인 매체가 제공하는 텍스트 정보물의 독점적 지위가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망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인쇄매체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페이지를 펼쳤을 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모니터로도 느낄 수 있느냐”며 오프라인 매체가 살아남는 관건은 종이매체의 소장가치를 향상시키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가 편집장으로 있는 <브뤼트>도 내용뿐만 아니라 디자인 개발에도 신경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분화되는 관심사, 전문문화지의 활성화

문화잡지계의 침체현상은 독자의 욕구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독자의 욕구변화는 대중문화잡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잡지에서 뚜렷하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흑자를 낸 영화잡지산업이 하향세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들어 영화잡지 1위였던 <씨네 21>를 비롯해 <스크린>, <무비위크>가 적자를 내고 2007년 <프리미어>가 2008년 <필름 2.0>이 폐간됐다. 문화평론가들은 영화잡지가 흑자를 기록하던 1990년대 후반엔 한국영화의 성장과 더불어 영상에 대한 지식인의 관심이 컸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관심분야가 더욱 다양해지고 세밀해진 독자들의 욕구 변화를 이들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분석한다.

일부 전문가는 독자의 세분화된 관심이 전문문화지의 증가를 불러올 것이라 예측한다. 2007년 한국잡지협회 세미나에서 ‘한국의 잡지산업, 지금은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발표한 박종수(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최근 전 세계적인 잡지시장의 추세를 보면 잡지의 숫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조류관찰자부터 스카이다이빙까지 각기 다양한 독자의 라이프스타일과 관심이 잡지를 더욱 세분화, 차별화시키고 있다”며 “소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준 높은 전문 잡지들이 활성화될 것”이라 말했다. (사)한국잡지협회 관계자는 “전문문화지 시장은 전반적인 인쇄매체의 어려움 속에도 별다른 영향이 없다”며 “뮤지컬 잡지와 재즈 잡지의 경우 오히려 발간종이 늘어났고 대표적인 전문문화지인 <월간미술>, <피아노음악>, <공간> 등은 마니아층이 깊게 형성돼 있어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복합문화지의 등장

이와 달리 독자들의 관심분야가 다양해질수록 복합문화지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김봉석 편집장은 “한 분야에 파고드는 독자층은 소수”라며 “일반 대중의 경우 한 분야에 깊게 들어가기보다 다양한 문화적 교양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문문화지가 전문 분야의 심화된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이라면 복합문화지는 독자들에게 친숙한 어법으로 다양한 문화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기본 역할이라 설명했다. 또한 복합문화지의 목적은 콘텐츠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주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KT&G 상상마당이 발행하는 컬처 매거진 <브뤼트>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창간됐다. 복합문화 월간지 <브뤼트>는 디자인, 영화, 대중음악, 사진, 책, 연극, 공연 등의 문화예술은 물론 라이프스타일로서의 문화까지 폭넓게 다루되 주류문화보다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좋아하는 20~30대를 타깃으로 한 잡지다. 김봉석 편집장은 “다음달 <브뤼트> 7호(2009.12월호)는 여행특집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번호도 <브뤼트>만의 다양하고 새로운 시선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최초의 복합문화 주간지로 태어난 <매거진 주간한국>도 ‘사회현상에 문화적 해석을 적용해 독자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매거진 주간한국> 박종진 편집장은 최초 시사주간지였던 <주간한국>이 문화잡지인 <매거진 주간한국>으로 재편된 까닭으로 정보 소통 패러다임의 변화를 꼽았다. 그는 “인터넷포털과 일간지의 영향으로 시사주간지만의 차별성이 약화되고 독자의 관심이 거대담론보다 자기 삶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과감하게 국내 유일의 문화라이프지로 특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종진 편집장은 주로 순수예술을 다루는 월간 문화잡지가 많은 상황에서 <매거진 주간한국>은 사회이슈에 문화적 해석을 입힌 정보를 제공하고 소외된 문화를 발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략적 잡지진흥정책방안의 필요성

박종수 교수는 이처럼 양질의 콘텐츠로 승부하는 문화잡지산업의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선 잡지산업의 기반강화를 위한 정책적 배려와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제정된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우수 정기간행물의 국고 지원과 전문인력양성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박 교수는 “이 법안이 한국적인 잡지콘텐츠의 개발 상황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제 남은 것은 올바른 잡지진흥정책방안 수립과 정확한 전략적 판단으로 성과를 이루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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