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던 결과대로 전쟁은 끝났다. 근육질의 팔뚝을 흔들며 으스대는 미국의 모습이 볼썽 사납기는 하지만, 여하튼 미국은 적어도 군사력에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고대 서양의 로마 제국이나 동아시아의 한(漢) 제국을 훨씬 뛰어넘는 지배력이다. 이러한 현대의 제국은 과연 앞으로도 계속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코노미스트'지 편집장 빌 에모트는 {20:21 비전}(더난출판사)에서 그럴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반미 정서가 역설적으로 미국의 힘을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제국으로서의 미국은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점령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자비로운 방식으로 지배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한 방식의 지배가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확산을 가져왔으며, 세계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 같은 지배적인 국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한다.

 저자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는 유럽과 달리 청산이나 해고 같은 창조적 파괴에 익숙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저자가 어떤 충고를 할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미국을 미워하든 좋아하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와 자본주의 체제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모트의 논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프랑스 국립인구연구소 자료국장으로 역사학자인 엠마뉘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까치)을 읽어보자. 그는 미국은 보호자가 아니라 약탈자에 불과하며, 결코 완전한 제국으로 결코 나아가지 못할 것이고, 심지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에서 여러 강대국들 사이의 하나로 쇠퇴할 것이라 주장한다.


 토드는 '세계의 인구와 경제가 유라시아에 집중, 통합돼 가는 반면 미국은 신대륙 한편에 고립돼있다'는 브레진스키의 지적, '제국이 외교적, 군사적 힘을 사방에 펼쳐놓는 상태는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쇠퇴할 때 나타나는 고전적 현상'이라는 폴 케네디의 지적을 인용한다. 경제적으로 볼 때 1945년 미국의 총생산은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90년대에 세계 경제의 미국 의존도는 크게 낮아졌다. 지난 10년 미국의 무역 적자는 1000억 달러에서 4500억 달러로 늘어났고 이 차액은 외국 자본의 유입으로 메워졌다. 미국은 미국 바깥 세계 없이는 현재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

 미국의 이러한 불안은 연극적 군사주의 혹은 행동주의로 표출된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즉 내부의 자신감 상실과 모순을 이란, 이라크, 북한 같은 나라를 위협하거나 침공함으로써 감추고, '나 아직 이렇게 살아 있어!'라고 외친다는 것. 밑천이 서서히 바닥나고 있는 불량배가 과시 행동으로 사람을 마구 패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을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 따라 위의 두 권의 책은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거나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에모트의 책에 대해서는 '뭐 이런 게 다 있어'라고 말할 독자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두 권의 책을 겹쳐 읽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 대해 친미, 반미 그리고 용미(用美)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이 분분한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미국에 대한 현실주의적 시각과 비판적 시각을 두루 살펴 볼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더구나 우리 민족의 생존과 평화가 걸린 북한 문제에서, 좋든 싫든 미국은 변수가 아닌 절대적 상수에 가깝지 않은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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