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번은 과도기를 산 그야말로 어정쩡한 세대이다. 80년대 말부터 이념의 시대가 간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입학 후에 만난 선배들은 표정이 어두웠고 냉소적이었다. 한편 서태지의 등장을 시작으로 랩이 유행하고 X세대 담론이 활발한 가운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야하는 상황에서 나름의 적응을 위해 고민하기도 했다. 무엇을 해야될지 몰라서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前세대는 90년대 학번들을 걱정하지도 격려하지도 않았다. 80년대 초반 학번이 스포트라이트를 크게 받았다면 90년대 학번은 단 한번도 조명 받지 못한 세대이다. 한발 늦게 현대사에 뛰어든 우리들은 사회 현실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선배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관심은 물론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는 것도 사라지는 것 같다.


90년대 중반 이후, IMF를 맞아 세계화를 경계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고도 생각했지만 그보다 극도의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경쟁이 심해졌다. 학생회와 과, 동아리 활동은 점점 축소되고 도서관은 시기를 불문하고 무척 붐볐는데 실로 경제가 대학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현실에 관심을 갖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많이 고민했다. 우리세대들이 변화하는 시대에 편승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방학 때는 농활, 학회 세미나 활동도 했고, 지금의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때 계획을 세워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것을 요약한 노트와 일기장, 습작 노트는 가장 소중한 평생의 자산이다. 대학시절 방학동안 취업 준비를 위한 공부도 필요하겠지만 교양이 되는 독서를 꾸준히 하기를 권한다. 한편, 90년대 배낭여행이 유행해 방학중에 많이 다녀오곤 했는데 이것은 90년대 학번들의 자유롭고 활발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 대학생들은 겉모습은 생기발랄하지만 속이 가득 차 굳어있어 마음은 일찍 늙는 듯하다. 방학은 그런 면에서 새로운 것을 접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다. 거창하게 사회 문제에 깨어있다기보다 다만 아직은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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