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낙태수술을 받기 직전 무슨 생각을 할까? 얼마 전 만난 A씨는 자신의 경험을 회상하며 이렇게 답한다. “내가 이 수술실에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자신의 온전한 삶을 위해 아이를 지우며 자신의 목숨부터 생각한다는 것이 이기적일 수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여자의 낙태는 자신의 아이를 지우기 이전에 자신을 지우는 일이다. 겨우 목숨을 건진 여성에게 돌아오는 것은 모성애가 없고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난의 손가락질이다. 이런 손가락들에게 여성이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낙태를 해야 하는 상황을 가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정부가 1일 발표한 ‘불법 인공임신중절(낙태) 예방 종합계획’은 보건복지가족부에 신고센터를 두고, 신고 받은 산부인과 병․의원을 행정기관에 고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제도적 수단을 강화해 낙태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산부인과 의사들의 낙태 시술 병원을 고발한 지 한 달 만에 의사들이 합법적인 증거를 대라며 시술을 거부했고, 낙태 시술 비용은 20배까지 올랐다고 한다. 수술을 할 병원을 찾지 못하고 이 비용을 감당못하는 여성들은 중국까지 가서 수술을 받고 있다. 이른바 ‘풍선효과’가 생기는 부작용을 낳았는데도 통제를 더 강화하면 낙태를 근절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더욱이 이 정책에 포함된 미혼모 대책은 심각하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50% 이하인 10대 미혼모가 24세가 될 때까지 매달 10만원의 양육비와 2만4000원의 의료비를 지원받게 되고, 임신 중인 청소년이 학업을 마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저출산과 낙태를 한꺼번에 해결해 보려는 심산이라고 판단하면 억측인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10대가 출산 후 월 12만4000원으로 아이를 키우고 학업을 마치라는 것은 어떤 상식으로 이해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낙태 문제를 논의할 때 생명존엄에서 문제를 제기하지만 이는 사회문화적인 여건을 도외시하고는 대안을 마련할 수 없다. 사람은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라나는 것도 중요한 사회문화적인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여성의 낙태권리를 인정하면서 의료진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조와 충돌하는 낙태나 기타 의료서비스의 제공을 유보할 수 있는 현명한 양심 조항을 입법화하는데 찬성했다. 더 나아가 미국 여성의 재생산권 권리센터는 낙태 시술 비용이 국민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도록 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이 이어지는 정세 속에서 왜 우리는 당사자가 원하는 대안을 무시하고 굳이 반대편의 길을 가는지 의문스럽다.

시계는 끊임없이 돌았고, ‘남보원’의 구호가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아직도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다. 특히 임신과 육아의 근본적인 문제는 언제나 여성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그녀들이 모성애가 없고 생명을 존엄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수술실로 가는 것이 아니다.

A씨는 말한다. 모든 엄마는 내 자식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하게 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진정한 모성애란 이런 것이 아닐까.

<希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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