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는 어느 때보다 낙태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지난 2월 3일, 낙태시술 병원을 고발한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태아의 생명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며 불법낙태 시술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낙태 방지 캠페인을 펼치겠다고 나서고, 낙태시술 병원 신고센터를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러한 논의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신체적·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주는 낙태 시술이나 출산의 모든 과정을 직접 감당하는 당사자인 여성보다, 의사와 정부가 훨씬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낙태논쟁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빠진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을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재생산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아이를 임신하는 도구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임신과 출산을 비롯한 몸에 대한 결정권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을 국가발전과 유지를 위한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국가정책에 따라 과거에는 아이를 낳아서는 안되었다가, 요즘은 아이를 반드시 낳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불평등한 이성애 관계 속에서 피임 결정권을 갖지 못한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않는 임신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열악한 사회경제적 여건은 개선되지 않고, 결혼제도 밖의 임신을 비난받아야 할 행동으로 여기는 정서도 아직까지 팽배하기만 하다.

최근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시술병원 고발이후, 여성의 임신․출산을 비롯한 몸에 대한 결정권에 대한 침해는 더욱 심각해졌다. 여성들은 낙태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기 어려워졌고, 시술 비용은 훌쩍 뛰었다. 비혼모 시설은 이미 수용 정원을 넘어섰고, 외국에서 낙태시술을 고려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법적으로 보장된 성폭력 피해로 인한 임신도 낙태시술을 거부당하고 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하는 단속 강화가 결국 여성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살다보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하는 순간을 만난다. 우리는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해 현재와 미래의 조건을 따져보고, 그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상상하며 심사숙고한다. 관련된 각종 정보를 찾아 꼼꼼히 검토하기도 하고 부모나 선배, 친구들의 조언을 듣기도 한다. 앞으로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라면 더욱 그렇다.

낙태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낙태를 결정하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낙태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생명을 존중하지 않아서 쉽게 내리는 결정이 아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비혼여성은 결혼제도 밖의 임신과 출산에 쏟아지는 비난과 편견을 고려해야 하고, 아이가 겪게될 어려움도 염려하게 된다.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필요한 경제적 상황도 살펴야 한다. 출산을 결심한다면 심지어 가족과의 관계 단절도 각오해야 한다. 만약 학생이라면 학업을 중단해야 할 가능성도 높다. 학업의 중단은 취업과 진로에 밀접하게 연결되기에 출산을 결정하는 것은 인생 전반에 대한 신중한 결정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기혼여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여성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드는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이유로 낙태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엄살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현실이다. 기혼여성이 비혼여성보다 더 많이 낙태를 하며, 반복적으로 낙태하는 숫자도 더 많다. 이 같은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아이를 키우기 힘든 환경인가를 너무나 여실하게 보여준다. 출산과 낙태에 대한 결정은 이처럼 삶에 대한 통합적인 고찰 끝에 내리는 책임있고 신중한 결론인 것이다.

여성이 성관계와 임신, 출산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성문화와 미비한 사회제도 안에서 낙태에 내몰리는 여성의 삶과 경험이 존재한다. 때문에 낙태가 이루어지는 사회경제적 이유에 대한 분석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낙태시술을 하는 의사와 여성을 고발해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낙태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환경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즉, 여성이 피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평등한 관계가 가능해야 하며, 비혼여성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한부모 가족 아이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 또한 양육의 책임을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과 국가, 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누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낙태가 줄어들기를 바란다면 여성이 자기 몸과 삶의 주체로서,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 인생을 선택하기 위해 필요조건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삶의 조건을 개선해 여성이 언제 누구의 아이를 몇이나 출산할 것인지, 그리고 출산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인생의 맥락에서 스스로 결정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글/김두나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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