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겨울, 법과대 학생회실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이산해 씨였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던 이 씨는 1992년 불탄 집을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했다. 그는 불행한 사건을 겪고 난 후 억울함을 풀기위해 법정에서의 싸움을 진행했으나 해결하지 못한 채 힘겨운 처지에 남게 됐다. 현재도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이 씨를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소견서를 쓴다.

이 씨의 삶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은 1992년 6월부터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가 잠자던 이 씨를 망치로 내려치고 집에 불을 질러 집의 일부가 소실됐다. 경황이 없던 이 씨에게 건축업자와 통장이 찾아와 재건축을 하자고 권유했다. 재건축이 진행됐고 이를 위해 이 씨의 명의로 대출이 됐다. 이 씨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던 임차인의 보증금을 변제하고 재건축 공사대금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정작 충격을 받아 경황이 없던 이 씨는 재건축을 승낙한 적이 없었다. 시공자의 서명이 없음에도 건축업자는 건축계약서를 작성한 후 재건축을 진행했고, 짓고 있는 건물에 세입자를 받았다. 1992년 7월 당시 작성된 건축계약서와 8월에 처리된 건축허가서의 동별 개요를 살펴보면 그 규모상 건축주가 직접 감리자를 지정해야 하지만 이 씨는 감리자를 지정한 적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건축허가대장을 보면 감리자는 ‘손유곤’이라고 기재됐으나 허가번호 704호 기안문에 첨부된 건축허가서엔 ‘오문이’라는 엉뚱한 사람의 이름으로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러한 사항을 지적하여 이 씨는 직접 고소를 했지만 건축업자가 제출한 건축허가서가 증거자료로 인정 되어 항고와 재항고 모두 기각됐다. 또한 그 이후 이 씨는 건축업자의 처남에게 일방적으로 상해를 당했으나 쌍방이 폭행을 행사한 것으로 처리돼 되레 벌금형을 받았다. 

이 씨는 경제적·육체적으로 궁박 상태에 빠져 임차인의 보증금을 변제할 수 없었고, 결국 집을 잃게 됐다. 물이 들어오는 지하방에서 홀로 사경을 헤매다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어린 딸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없는 힘든 생활을 계속해 나가던 중 이 씨의 딱한 처지가 기독교 방송을 통하여 알려지게 됐고, 다행히 후원자들의 모금으로 간신히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이 씨는 억울한 사정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직접 고소장을 작성해 사기행위를 한 건축업자와 통장, 관악 구청의 직원 및 관악구청장, 자신을 폭행한 건축업자의 처남에게 전치2주의 진단서를 내어준 의사에게 허위공문서 작성 및 건축법 위반 등으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각하됐다. 앞서 언급됐던 건축법과 관련한 부분은 충분히 재조사를 할 여지가 있으나. 이전 수사 자료를 그대로 인용하는 바람에 수차례 각하 됐다고 했다.

사건이 시작된지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2010년 현재, 이 씨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 25만원의 세를 내는 단칸방에서 영양실조로 뇌성마비환자가 된 딸이 장애인업체에서 벌어오는 80만원으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 월세마저 집 주인이 5만원을 올려달라고 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 씨는 여전히 억울함을 풀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도움을 청하고 있다. 학생회실에 두고 가신 한 뭉치 두께의 서류가 그 분의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보여주는 듯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학생들의 도움을 받으러 찾아오신 분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 분의 딱한 처지를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차권수 법과대 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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