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억울하고 기막힌 일이다.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죽은 어린 영혼은 구천을 떠돌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이 비참한 현실 앞에서 더 이상 자족적인 “대~한민국”을 외치지 말아야 한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어린 두 여중생의 가슴아픈 사연을 접하며 월드컵으로 한층 높아진 우리의 의기양양함이 어찌나  부끄럽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우리가 지키지 못한 우리의 어린 딸들의 죽음 앞에 헛된 구호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초기에 미군 당국은 급작스럽게 사고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고의성이 없고 작전수행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인 만큼 미군의 책임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뒤늦게 미군측 주장이 허위임이 밝혀졌지만 ‘사고 유가족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다’든가, ‘한미합동조사단에서 충분히 사고경위를 조사했다’는 발표는 사건을 은폐하려는 변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책임회피를 줄곧 견지해왔던 미군당국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주한미군의 만행을 규탄하고 진상규명과 사죄, 책임자 처벌과 배상을 요구하는 국민여론이 들끊자 결국 리온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군이 사고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정부의 일차적인 기능이 자국민의 생존권을 지킨다는 것인데 이 같은 사건이 생길 때면 ‘왜 이리 한국정부는 매번 미군관련 범죄 앞에선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는걸까’란 당연한 질문을 던져본다. 국제법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약소국이 강대국과 맺은 조약에는 불평등한 조항들이 담겨 있을 법한데 유일 강대국이라고 자처하는 오만한 미국이 주한미군의 범죄에 대해서 얼마나 자신들이 유리하게 해놓았을까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소파협정이 아닌가 싶다.

소파협정에는 한국정부가 일차적 재판권을 갖는 미군범죄의 경우라도 미군의 요청에 따라 재판권을 포기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실제로 미군측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범죄에 대해 한국에 재판권 포기요청을 해 왔고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이란 성역(!)앞에 번번히 주권을 포기하는 행위를 되풀이 해 왔던 것이다.

한국 수사당국에 의해 재판권이 행사된 경우는 미군 범죄의 7%뿐이었다는 통계는 우리의 주권이 얼만큼 심각히 훼손당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다. 
 
용암처럼 분출되던 6월, 뜨거운 월드컵 열기의 뒤안길에 묻혀 관심에서 멀어진 듯 떠나갔던 내 누이 둘을 이제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 온 나라를 붉은 꽃밭으로 만들며 열광하던 월드컵 경기를 보며 가슴 뜨거워지던 그 감격, 그 희열을 식히지 않을려면 미군범죄 앞에서 무기력하게 절망하는 대한민국을 딛고 내 나라가 당당히 주권국가임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깊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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