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검문. 이 단어만 들으면, 대학 초년기가 떠오른다.
당시는 정치적 이슈에 대학생이 발끈하며 길가로 나서는 끝물이었다. 대학생의 행동은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때도 적잖았다. 이 때문에 경찰이 범법자를 잡기 위해학교 앞에 서 있기도 했다. 그들은 수상해 보이는 학생을향해 신분증 공개를 요청했다.
까짓 주민등록증이나 학생증 보여주면 끝이었다. 그러나 마뜩찮은 공안당국의 위협에 동참하고 싶지 않 학생들 입장에서 불심검문에 응하는 것은 불의와 타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학생들은 “불심검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맞섰고, 불심검문을 하려는 경찰과 학생이학교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은 종종 볼 수 있었다.이 시절을 돌이켜 보면 까마득하다. 그러고 보니 이때는 휴대폰이 막 보편화 되는 시점이었다. 세월이 지난2010년 휴대폰은 전화를 넘어 컴퓨터로 진화했다. 집안에서 3D TV를 통해 월드컵 경기를 마치 경기장에서 있는것처럼 볼 수 있는 시대다. 기술의 발달만 놓고보면, 10년이 더 지나면 어릴 적 만화영화에서 그리던 우주여행이가능하지는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도 해본다.
IT의 발달은 어럴진데, 정치는 후퇴했다. 앞서 말한 역사 속 퇴물인 불심검문을 다시 꺼냈다. 국회에서 논되고 있는 관련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찰은 필요에 따라 시민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고, 차량이나 선박도 멈춰 세우고 조사할 수 있다. 경찰이 조사하는 대상도흉기와 무기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위험한 물건 소지 여부다. 경찰 입맛대로 그리고 임의대로 시민의 신상을 훑을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의 후퇴는 정부의 비판자를 향한 조치에서 여실히드러난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이 민주주 속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다. 위정자란 다양한 이해관계와 의견을 조율해서 더 나은 미래로 이끄는 역할을해야 한다.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할 때는 토론과 설득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맞서 있는 이의 입을 틀어막아반대 의견을 없애는 행동은 옳지 못하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 이후, 정부의 대처를 보면 어안이벙벙해 진다. 정부가 발표한 대로 믿지 않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는 이들은 전부 잡아넣겠다는 식이다. 천안함사건은 한반도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한 일이다. 이 엄청난 일의 배경을 두고 해석은 제각각 일 수 있다. 사건 발생과정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사실 그대로를 전달했는 데 왜 믿지 않느냐”며답답해 하지만, 사실과 진실 간의 간극 속 무언가가 있지않을까 하는 갸웃거림을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또한 북한과 다를 게 무엇이있겠는가?
정책이 곧 정치 논리임을 감안하면, 정부의 강경한 태도도 이해된다. 천안함 건을 꼬아 정부의 반대 세력을 결집하려는 반정부 인사들의 힘을 눌러야 하는 게 현실 정치 생리일테니까. 그러나 피상적인 접근은 반감을 낳는다.구조적으로 사실과 진실의 간극을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지 근본 원인을 찾은 뒤 그 문제점을 개선하는 게 성숙된민주정치가 아닐까?모바일 시대로 가는데, 정치는 박통 시대로 가는 것 아
닌가 하는 생각이 기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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