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사이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는’ 설렘을 가져본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올해봄은 봄날 같지 않은 날씨로 수상했거니와 천안함의 폭침으로 내내 우울했다. 천안함 사건의원인을 두고 여전히 설왕설래하지만, 북한의 소행으로 공식화 되었고 국제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남한 내에서 사건의 원인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분분하고 신중한 대처를 피력하는 이들이있다. 그들의 의중은 그것이 한반도 평화와 안
정에 미치는 폭발력과 파장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단지 그들이 골수 ‘좌빨’이어서 북한을 옹호하기 위해 그런 것은 결코 아니라고본다.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 있은 뒤에야틀림없고 신중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사건 초기 나름 신중함을 유지했던 정부는 국제 민ㆍ군 합동조사단의 발표 후 대북 강경책을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분명 피해자의 입장인현 상황에서 남한은 물러설 명분과 이유가 없다. 그것이 설사 보다 전향적인 정권이라 하더라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군사적 보복을 기획하거나 유도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소한 군사적 대치에도 자위권 발동이라는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있다. 같은 이유로 실추될 대로 실추되었다고 생각하는 군은 명예회복이라는 조급증으로 사소한 시비에도 강경하게 대응함으로써 군사적 확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하겠다.
북한은 갈 때까지 갔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위한 6자 회담의 재개와 경제적 궁핍을 타개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 철폐가 절실한 상황에서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서 전가의 보도를휘두르듯이 ‘남쪽의 위협’을 팔고 있다. 비정상적인 국가 운영과 봉건 세습의 이행, 일부 계급만을 위한 폐쇄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북한의 행태에상식의 국가이성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목하 남북한의 대결 상황이 ‘치킨 게임’(chicken game)에 비유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남북한 사이에 그 게임의 종국은 전쟁이다. 한국전쟁을 실제 겪은 세대가 점차 소수가 되어가는 지금 남북은 한반도에 사는 이들의 생명을 걸고 전쟁을 함부로 이야기하고 있다.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도박의 위중함이 낳을
결과를 모르고 선거판에 ‘북풍’으로 이용하려는추태마저 연출하고 있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주민들의 결속이 다져졌는지는 모르나 그것은 세습으로 이익을 볼 군부의 강성 분파와 당 관료들뿐이다. 체제의 피로도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경제의 궁핍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북한 관계의 비관적 전망은 북한이 현재 정권세습의 이행기에 진입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장기화될 수도 있다. 북한 핵문제는 ‘천안함’으로 인한 남북 대치로 인해 의제에서 밀려나 동력을 상실했다. 미국을 비롯한 일본과 호주는천안함의 폭침을 기회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여 동맹 내의 균열과 갈등을 봉합하고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G2의 구성국으로 불리는 중국은 북한이 치는 잦은 사고로 스타일을 구기는
척하면서도 그들의 잇속은 적절하게 챙기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과 핵무기 실험을 했을 때보다남북한의 긴장관계는 더 심각하다. 핵이 미국을대상으로 한 북한의 고도의 생존전략이라면 천안함 사건은 즉자적인 남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한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공표하는 과정에서도 대화와 관계회복 여지를 남겨 두었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의 유지와북한 영아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긴장 국면은 오래 갈 것이나 파국은 막
아야 한다.남북은 적절하게 명분을 찾아 천안함 사건에 따른 출구를 마련하는 전략과 복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주변 국가와의 외교적 관계를통한 압박도 좋고, 실제 보호국인 중국의 위력에 편승하는 것도 좋지만 남북 사이에 최소한의 핫라인은 유지하면서 적절한 외교적 레토릭(rhetoric)과 이슈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한 체제는 완전히 거세당할 것이고 또 한 국가는 어쩌면 화마에서 한참을 신음하게 될 수도 있다. 누구 좋자고 이런 일을 자행하는가?
남북한이 동반 출전한 월드컵 시즌이 도래하고 있다. 그나마 남북의 공통 화제가 있어 다행이다. 이 기회를 남북한은 이용할 필요가 있다.칙칙하고 살벌한 정치 군사적 공세는 수위를 조절하면서, 남북한의 16강 이상의 선전을 서로 기원하는 덕담을 주고받자. 이때를 기회로 과감하게 남북한은 적절한 명분을 찾아 천안함의 암흑으로 만들어진 미로에서 출구를 찾아야 한다.일촉즉발의 대치 국면은 오래가서 좋을 것이 없
다. 결자해지라, 북한이 타협에 능란하다면 이런수도 마땅히 복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영주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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