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개월동안 파국의 나락으로 치닫던 고려대학교가 신임 총장 서리의 취임으로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제 15대 총장 선출을 둘러싸고 반목과 불신의 골을 더해 가던 학교 구성원들이 학교를 사랑하는 대의(大義)에서 상생(相生)의 합의점에 도달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급한 불은 잡았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지금부터다. 일련의 사태가 고려대학교에 남긴 씻을 수 없는 오명과 바닥에 떨어진 위신, 내 외형적 상처의 치유는 차치하더라도 겨우 봉합된 생채기에 또 한번 매스를 가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범한 총장 서리 체제는 이런 의미에서 그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봉합된 생채기에 새 살이 돋게 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시 매스를 가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총장 서리 체제의 노력과 성과에 달렸다는 말이다.

지난 일련의 사태는 암묵적으로 존중돼 왔던 총장 선출 제도와 그 절차가 일거에 부정되면서 학내분규로 이어진, 일면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언젠가는 곪아 터질 종기를 우리 스스로가 안고 지내왔던 것이다. 교수협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재단, 여러 가지 폐단에도 직선제의 이상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교수협, 공정성이 의심스러운 총추위의 불협화음은 이미 오늘의 사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나마 조기에 합의점을 찾아낸 것은 잘못은 잘못으로 인정하고 모두가 상생하자는 고대인 특유의 진취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 서리 체제는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학내 구성원의 존경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총장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음을 명심해, 제도의 민주성과 절차의 공정성이 담보된 새로운 총장선출 방식을 창출해 내야 한다. 8개월의 길지 않은 임기동안 총장 서리 체제와 곧 구성될 제도개선위원회의 활동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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