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거부하고 시위에 나선 학생, 학교 정상화를 위해 팔을 걷어부친 교사와 생계를 미룬 학부모. 그들은 바로 ‘한빛고등학교’를 살리기 위한 하나의 공동체이다.

한빛고등학교는 설립 인가시 교육청의 지원불가 방침으로 학생들의 수업료와 재단 전입금으로만 운영돼 온 학교이다. 그 동안 이사진을 족벌체제로 유지해 온 이사장 부부와 학교 운영을 두고 갈등을 빚어오던 학생들은 전라남도 교육청의 방관과 지난달 재단의 폐교신청으로 전교생이 등교거부에 들어간 상태이다.

학교 정상화를 위한 서울집회가 있던 지난 9일, 1, 2학년 등교거부 11일째, 3학년 등교거부 일주일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한빛사랑’이 새겨진 빨간 조끼를 입은 학생들과 어른들이 하나 둘 버스에 올랐다. 자리가 없는 학생을 챙기는 선생님, 도시락 개수가 부족해 나눠먹겠다며 도시락을 돌려주는 학생간에 정겨운 대화가 오간다. 출발 직전, 택시에서 내려 급히 뛰어오는 고3 여학생을 보는  선생님의 얼굴에는 걱정과 기쁨이 교차한다. “공부해야 하는데 너도 왔구나…”“제가 원래 이렇잖아요”서둘러 버스에 오르는 학생의 얼굴에는 고3의 무게보다 참석했다는 뿌듯함이 역력하다. 하지만 설마 했던 이사장의 학교 폐교신청이 사실로 확인돼 충격을 받은 탓일까,“우리들이 이렇게 마음을 모아서 서울까지 가는데 한빛 정상화가 설마 안되겠어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얼굴 뒤에 긴장과 투쟁의 굳은 의지를 좀처럼 지울 줄 몰랐다.

집회 참석을 위해 새벽 4시까지 농사일을 했다는 학부모 이창현 씨는 “재단 측이 학생과 교사의 의견은 수렴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파행을 저질렀다”며 분개했다. 자녀가 고3인데 대학 입시와 관련해서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아이들이 옳지 못한 일에 맞서 싸우는 경험을 하는 좋은 기회가 돼 기쁘다”고 대답하는 열린 자세를 보였다.

버스 뒷자리를 가득 메운 학생들 역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고 있었다. 고3 학생들의 100% 찬성에 의한 자발적 등교거부는‘식구총회’라는 토론과정에서 탄생한 하나의 ‘성과’다. 1,2학년 동생들이 한빛 정상화를 위한 대장정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고3이라는 이유로 편하게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내린 결정이었다.“이런 상황으로까지 몰고 간 이사장이 원망스러워요. 마치 우리가 사고 파는 물건이 된 기분이에요”라고 말하는 3학년 신유나 씨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렸다. 학생대표인 김바다 씨 역시 좋은 선생님과 함께 마음놓고 공부할 수 없게된 현실이 마음 아프다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마음 역시 각별하다. “마음껏 공부만 해도 모자랄 아이들이 나서서 힘을 모으는 것을 보면 맘이 안 좋으면서도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눈빛에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없으면 선생님도 없다는 생각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한빛고의 정상화에 걸었다. 

4시간 남짓을 달려 도착한 곳은 세종로 열린 시민공원. 빌딩 숲 한 가운데서 교육부가 있는 건물을 마주한 채 작은 집회는 시작됐다. “한빛을 살려내자!”는 구호와 함께 시작한 이들의 외침은 노란 셔츠와 우산을 쓴 참가자들의 가슴 속에서 터져나오는 소리였다. 이어 한빛고 정상화 염원을 담은 에드벌룬이 떠올랐다. 육중한 건물을 향해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가 작다면, 마음이라도 멀리 내다보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에드벌룬을 바라보는 모두의 눈빛 속에 담겨 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동문들과 그 부모님들이 모여들면서 시간이 흘러갈수록 집회 참가인원은 더 늘어갔다. 자신을 한빛고 5학년이라고 소개한 한 학생은 한빛고를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며 한빛고를 통해 형성된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했다. 그러나 집회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모두 한빛고와 관련된 사람들 뿐 공원을 지나가는 사람이나 취재하기 위해 온 사람들의 발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립학교법 개정과 사학비리 척결을 외치는 집회는 어느덧 2부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급식비를 횡령하는 등 억대 회계부정을 통해 재정부실을 초래한 안행강 전 이사와 현 김길 이사장 부부에 대한 규탄을 외치는 목소리는 높아만 갔다. 또한 교육부 차관과의 면담 결과, 폐교 방지를 위한 적극적 역할수행을 약속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집회장의 모든 이들은 정상화에 대한 희망으로 환호했다. 이어진 3분 발언대 순서에서는 한빛 정상화를 염원하며 매일 기도한다고 울먹이던 졸업생의 말에 모두 눈시울이 젖기도 하고 손녀가 다녀야 할 학교를 지키기 위해 집회에 참석한 조부의 외침에 목이 메기도 했다. 이후  스승의 은혜, 어버이 은혜 노래를 마지막으로 4시간에 걸친 집회는 끝이 났다.

이날 저녁 시작된 한빛고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6차 회의에서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은 한빛고의 미래에 대해 새벽 늦은 시간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까지 7차에 걸친 공대위 회의는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며 한빛고의 미래에 대해 교육청은 입장조절 역할만 강조할 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어 정상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재단측의 폐교신청은 지난 10일(토) 재단 측과 교육청과의 삼자 면담 이후 일시적으로 연기된 상태이다.
 
학교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앞으로 힘을 모아 넘어야 할 산들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대안 교육이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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