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막을 내린 「2002 한일 월드컵」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월드컵은 IMF 외환관리체제 이후 우리네 얼굴에 서려있던 냉소와 열패감을 떨쳐내고,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간사하여 등잔불이 밝으면 그만큼 그 밑의 어둠을 보지 못하는 법이다. 동방의 반도국을 환희의 축제로 물들인 월드컵 기간, 그 輝光때문에 오히려 어둠으로 가려져야 했던 ‘그들만의 리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자신의 피땀어린 노력을 기울여 회사를 살려놨음에도 불구, 사실상의 정리해고를 당한 한국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의 피맺힌 항거는 전국민적 공감대에 미흡하다 하더라도,  한국의 16강 진출 사활이 걸린 하루 전, 경기도 양주군에서 미군의 궤도차량에 의해 무고하게 죽음을 당한 두 여중생의 가슴아픈 사연은 시청앞 광장의 광란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대 사건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사건은 한 개 방송사에서 잠깐 소개되는 정도였다. 당시 국내 유력 방송사들은 적게는 80%에서 많게는 1백%까지 월드컵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우리의 언론들이 금세기엔 없을 국가적 잔치판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국민들이 월드컵 기간만큼은 불합리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까?

월드컵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따지고, 국민적 단결과 대통합을 소리높여 외쳐봐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러한 불합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여 마지않던‘대∼한민국’은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맹목적 애국심보다는 제 눈의 티도 볼 수 있는 냉철한 애국심이 아쉬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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