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목) 시위대가 서울역을 출발해 남영삼거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 왼쪽에서 3번재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사진=이범종 기자 joker@)

지난주 서울에선 G20 정상회의에 모든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환율문제에선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금융규제안을 만들기로 한 ‘서울선언문’을 발표하고 12일(금) 막을 내렸다.

 

G20이 열리는 이틀 동안 삼성역 주변에는 엄청난 수의 경찰이 배치됐고, 일부 시민들은 보신각과 서울역 광장에 모여 G20 반대집회를 열었다. 고대신문은 10일과 11일 보신각과 서울역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규탄집회 현장을 취재했다.

10일 오후 7시. 700여명의 사람들이 보신각에 모였다. 이들은 자본을 통한 세계화가 아닌 사람 중심의 세계화를 이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G20이 비민주적이기 대문에 세계경제 문제를 다룰 대표성이 없고, 해결책 역시 노동자를 희생시켜 금융자본의 손실을 채워주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이상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파이를 키우기 위해 우리는 엄청나게 희생해왔다. 이제는 나설때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민중에게 돌리지 말라”고 주장했다.

G20이 20개국이 모여 진행한 회의인 만큼 집회현장에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을 미국에서온 교사라고 소개한 남성은 G20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노동자를 길들이며 작은 정부를 추구해 복지를 줄인다”며 “자본 중심의 세계화가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G20회의가 열리는 11일 오후엔 서울역 광장에서 ‘G20 규탄 국제민중행동의날’이 열렸다. 전날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집회에 참여했다. 경찰 추산 3500명, 주최 측 추산 1만 명이었다.

군중들 사이로 ‘G20 규탄 국제민중행동의날에 참여하는 고려대학생들’이란 깃발을 든 본교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교환학생 너댓명도 그들과 함께 서울역 광장을 찾았다.

집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무대에서는 노래공연과 연설이 이어졌다. 집회 도중 한 할머니가 무대 앞으로 나와 “쇠고기는 노무현이가 들여온 겁니다! FTA도 마찬가집니다! 노무현, 김대중 잘 죽었다 만세!”라고 외치기도 했다. 행사 관계자가 할머니를 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할머니가 돌아오길 여러 번 반복했다. 먹을거리와 방석을 파는 사람부터 에이즈(AIDS) 환자 지원을 확대하라는 동성애자 단체, 집에서 쫓겨난 철거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 중에는 ‘모든 권력을 해체하자. 창의적 혼돈을 실천하자’는 아나키스트도 있었다.

눈길을 끄는 퍼포먼스도 벌어졌다. 청사초롱을 든 손오공과 음향대포를 든 저팔계, 고양이, 쥐 가면을 쓰고 어묵을 든 사람까지 저마다의 방법으로 G20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중이었다. 곳곳의 G20 광고에는 대학강사 낙서사건으로 화제가 된 ‘쥐’ 스티커가 붙었다.

△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낙서가 돼있다. '쥐' 스티커도 보인다. 사진제공=소냐 코클린(Sonja Coquelin)

형광색 옷을 입은 경찰들이 시위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경찰 주변에는‘인권침해감시단’이라 쓰인 옷을 입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 인권운동사랑방과 다산인권센터에서 활동하는 인복 씨는 자신을 시위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인 씨는 “정부는 G20을 위해 경찰력을 강화했다고 들었는데 경찰이 시위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4시 15분. 대열은 예정대로 행진을 준비했다. 도로로 나오려는 시민들을 막는 전경들 때문에 시위대와 약간의 마찰도 있었다. 뒤에 서있던 전경들은 몸싸움하는 전경들에게 “감정적 대응 자제해!”라고 소리치며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시민들은 “허가받은 시위를 왜 이제와서 막느냐”며 반발했다. 서울역 광장을 출발한 행렬은 남영삼거리로 향했다.

주변 시민들은 물론 주변 식당주인들도 인도로 나와 행렬을 지켜봤다. 일부 사람들은 시위대의 행렬에 부정적인 눈초리를 보냈다. 길을 지나던 한 시민은 “국가적으로 경사스러운 날에 이게 뭐하는 짓이냐. 길을 점거하고 차를 못 다니게 하면 안 된다”고 다그치기도 했다.

저녁이 되자 비가 왔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기자 역시 비를 맞으며 시위대를 따라갔다. ‘노점노동연대’ 깃발을 든 조덕휘 노점노동연대 준비위원장은 G20 때문에 노점상이 심한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G20 때문에 영업을 할 수 없다”며 “강남엔 노점상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정상회의 때문에 노점상을 탄압하는 걸 보면 G20이 서민을 위한 회의는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한 시간 정도 걷자 행렬은 목적지인 남영삼거리에 도착했다. 이날은 G20정상회의 뿐만 아니라 한·미 FTA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컸다. 집회에 참여했던 미국노총의 한 간부는 “한·미 FTA는 미국과 한국 노동자 모두를 희생시키기 때문에 좋지 않다”며 “한·미 FTA는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같이 집회에 참여했던 본교 교환학생 리처드(Richard) 씨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평화적으로 집회가 열렸고 참여한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고 답했다. 리처드 씨의 말처럼 한국의 G20규탄시위는 외국과 달리 평화로웠다. 효과적인 시위 통제를 고민하기보다 거리에 나선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국격을 높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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