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양력 11월 7일)를 입동이라 하니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절기에 익숙지 않은 도시인이라 몸과 마음 모두 겨울을 맞이하기엔 아직 한참 이릅니다. 이제야 샛빨갛게 물든 단풍을 낙엽으로 만드는 겨울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지구온난화니 뭐니 해도 계절은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봄 오고 여름, 여름 가고 가을, 가을 지나 겨울입니다. 물론 겨울 속엔 봄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각의 계절 속에서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투정하기 일쑤입니다. ‘여름은 왜 이렇게 더운걸까, 언제쯤 시원해지지…..겨울은 왜 이렇게 추운지….언제쯤 봄이 올까’하며 세월을 보냅니다. 그나마 봄은 행운아 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을은 없습니다. 가을만큼 빨리 지나가고 티 안나는 계절이 없어서 일까요? 하지만 저는 가을이 참 좋습니다. 추억할게 많은 가을이 참 좋습니다. 기억은 오감을 타고 옵니다. 잔잔한 노래들이 들려오면 제 안에 꽁꽁 숨어있던 기억들이 살아납니다. 평소엔 잊고 지내던 일들이 노래를 타고 제게 다가옵니다. 아직은 어린 나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추들이 떠오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에 무뎌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커피 을 모르지만 내일은 쓴 커피를 한번 마셔봐야겠습니다.
저는 여태껏 사랑이란 걸 모릅니다. 기껏해야 짝사랑 몇 번 해본 게 전부인데 그것을 사랑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제 나이 10살 때쯤 국민학교는 초등학교가 되었습니다. 21세기에 국민학교라는 단어는 완전히 사라진 단어입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성능 좋은 컴퓨터가 보급되었던 시절도 아닙니다. 그 당시 컴퓨터들은 486이니 586이니 하며 불렀으니, 지금의 컴퓨터들은 1086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불과 십여 년 사이에 이런 변화가 생겨서 일까요? 제 국민학교 시절 아득히 멀어 보입니다. 솔직히 얼굴이 떠오르진 않습니다. 그런데 매번 가을이 오면 활짝 웃고 있는 그 아이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물론 얼굴이 떠오르진 않습니다. 제게 현주는 노란색 입니다. 은행나뭇잎처럼 노오란 색을, 현주는 닮았습니다. 그 아이는 이맘때쯤 전학을 갔습니다. 살면서 여자 아이 때문에 운 건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사실 그땐 제가 왜 울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제가 현주를 많이 좋아했나 봅니다. 그 아이도 저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제게서 가을을 빼앗아 가는 겨울이 참 밉습니다. 뭐, 괜찮습니다. 계절은 지나치는 법이 없으니까요. 다음 가을을 기약하며 제 추억을 담아 가을을 보내주어야겠습니다. 피천득 시인의 ‘인연’이라는 수필집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매년 가을 속에서 그 아이를 마주치니, 저는 가을이 참 좋습니다.

서정욱 문과대 한국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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